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을 꿰고 있는 누군가가 ‘베테랑2’(2024)를 본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류 감독 특유의 액션신은 변함없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베테랑2’에 담긴 메시지를 보면 다른 사람이 제작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 급진적인 변화가 있으면 찬반이 명확히 갈리듯, ‘베테랑2’도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다. ‘베테랑1’(2015)이 1300만 명의 관객을 확보하며 높은 평점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이 상상 속에서나 원하던 것, 재벌을 무찌르며 카타르시스 느끼는 것을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재벌을 악마화하며 그리는 선악 구도가 억지이긴 해도 대중은 그런 이분법을 좋아한다. ‘베테랑1’이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범죄자가 아니라 선하고 매우 성실한 인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볼 사람만 보는 영화가 됐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재벌이 되기까지 또 재벌의 가족으로 살면서 매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실은 대중이 궁금한 게 아니다.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재벌의 삶을 시기하고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대중 심리를, 류승완 감독은 잘 이용했다. 그런데 ‘베테랑2’에서는 대중 심리를 이
평양 시내에는 ‘통일역’이란 이름의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역 간판에서 ‘통일’이란 이름이 지워졌다. 이 역의 이름은 아직도 그냥 ‘역’이라고 한다. 올해 1월 17일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이후 북한 정권은 ‘삼천리 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동족을 의미하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북한 정권이 어느날 갑자기 ‘남조선’이란 용어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도 같은 것이다. 남한은 동족이 아니라 그냥 외국이란 걸 북한 내부에 선전하기 위함이다. 그럼 북한이 한반도 2국가를 주장하고 통일을 포기했으니 도발 위험도 없어졌는가. 정반대다. 동족이 아니므로 까짓 핵폭탄 좀 쏜다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휴전선 인근에 지뢰를 대량 매설했다는 건 우리 군이 인정한 사실이다. 지뢰밭을 뚫고 인민군이 내려올리는 없겠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핵폭탄은 지뢰밭 위로 날라온다. 대신 한국군이 북으로 밀고 올라가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북한은 재래식 전력으로는 한국군에 절대 열세이니 기
한때 김태호 PD는 MBC 예능의 상징이었다. 폐지 직전의 ‘무한도전’을 맡아 MBC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에 올려놓더니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키워냈다. 예능프로그램으론 드물게 무려 13년간 방송되다 2018년 종영됐지만, 지금까지도 OTT 사이트에서 순위권에 오르는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MBC를 넘어 한국 방송의 한 기점이었다. 순간적인 웃음에 기대던 예능프로그램에서 해를 넘기는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제작진과 출연자가 10년 이상 함께하며 나이 들었다. 시청률과 광고 수주에 따라 정기 개편까지도 못 버티는 프로그램이 비일비재한 방송가에서 ‘무한도전’은 ‘전국 노래자랑’에 비견되는 역사와 탄탄한 팬덤을 자랑했다. 그런 무한도전이 이렇다 할 고별식도 없이 갑자기 종영했고, 이후 김 PD는 MBC에서 새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했지만 결국 MBC를 떠났다. ‘무한도전’의 인기에 힘입어 MBC 사장은 누군지 모르는 시청자도 김 PD는 알고 있었고,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몰라도 김 PD는 기억했다. 스타 PD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도 MBC의 김태호와 KBS의 나영석은 소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타 PD였다. MBC 장기파업이나 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이춘근 박사는 “한국 언론을 봐서는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특히 미국 대선 보도와 관련된 얘기다. 한국 언론은 보수/좌파를 막론하고 진작부터 트럼프를 괴짜로 매도했다. 지난 2016년 미 대선에서 한국 언론은 일제히 힐러리 클린턴 후보 당선을 전망했다가 속절없이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 현재 진행되는 미국 대선에서도 해리스(그전에는 바이든)가 트럼프를 이기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대문짝만하게 보도한다. 이춘근 박사는 이런 식의 한국 언론 보도가 미국의 현실과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한 것이다. 12일 아침 한국 언론은,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모두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토론에서 이겼다”고 도배했다. 전날 진행된 ABC 방송사 토론 대결에서 해리스가 잘했다는 것이다. 근거는 미국 CNN 여론조사인데, 토론 직후 해리스가 트럼프를 63 대 37로 이겼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나. CNN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직 시절부터 ‘가짜뉴스’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던 언론사다. 트럼프의 이 주장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CNN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민주당 언론이
재작년(2022) 추석 당시 세 영화 ‘공조2’, ‘육사오’, ‘헌트’가 경쟁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탈주’까지, 모두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다. 흥행작을 찾기 힘든 최근 영화계에서 이들은 모두 꽤 많은 관객을 확보했다. 마침 이 시기에 북한 소재 영화가 재밌는 게 많이 나와 우연히 그런 걸까? 영화가 흥행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기에 그런 측면도 없진 않겠다. 하지만 북한을 소재로 했다는 것 자체가 재밌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영화감독 입장에서나 관객 입장에서나 ‘북한’이란 상당히 미스터리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북한은, 안 좋은 곳인 줄은 알지만 가본 사람이 극소수여서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니 영화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의 영화를 제작하기 좋고, 그러면 관객도 더 흥미를 느낀다. 북한 소재 영화가 많이 제작될 수밖에 없고 또 이 중에서 흥행작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도, 대한민국에 영화라는 게 존재하고서부터도 북한 소재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북한이란 공간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야권의 친일 공세에 흥분한 일부 보수 진영이 결국 케케묵은 신한일어업협정 논란을 들고 나와 ‘김대중이 친일했다’고 한다. 특히 극단적 성향의 유튜브 등에선 ‘친일이 애국’이라 하지는 못할 망정, 친일이 매국이란 좌파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와 저들의 입장을 오히려 거들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신한일어업협정이 영토 문제와 관련 없다고 두번이나 판시했는데, 일부는 판결을 부정하며 협정을 파기하자는 위험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마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강화시켰다"라고 주장하며 이 협정을 왜곡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협정이 한국에 불리하게 체결됐으니 협정을 파기하자는 반일 몰이로 곧바로 연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상면 서울대 국제법 교수가 최근 ‘독도 본부’란 단체에 기고한 논문부터 발췌해 살펴보자. ‘독도 본부’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신한일어업협정’으로 초래된 독도 영유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했고, 정부와 전혀 접촉하지 않는 순수 민간단체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면 교수는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에 둔 게 영유권 문제를 촉발시킨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잔뜩 경계심을 가지고 기사를 읽었다. 분명 조회수 뻥튀기하려 저런 제목을 뽑았을 것이란 의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였다. “박근혜 존경한다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는 그 발언 얘기다. 소름이 돋았다. 정치인 이재명은 무려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서울대 학생들을 앞에 두고 진짜 저 말을 했다. “말의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면서. 그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문자가 아니라 그 말의 ‘맥락’을 보란 뜻이었다. 이런 말을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진짜로 했다. 온 국민이 작두를 타란 거군. 대장동 발 쓰나미가 이재명 후보를 향해 몰려올 때 스스로를 보호하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고 거짓 방파제를 치는 건 봐줄 수 있었다. 이재명이 거짓말을 했다, 그걸 밝혀내는 게 언론의 책무였기 때문이다. 원래 기자는 기삿거리가 많이 나오는 정치인을 은근히 좋아한다. 그래서 자연인의 양심으론 ‘저런 거짓말쟁이’라고 욕했지만, 곧 탄로날 거짓말을 쫓아가는 기사를 쓰는 게 나쁘지 않았다. 물론 ‘윤석열 검사가 대장동 브로커에게 커피를 타줬다’는 김만배-신학림 조작 인터뷰가 터져 나왔을 땐, 화를 참기가 어려웠지만. 윤 대통령
대통령실은 23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오염수를 방류한 지 1년이 됐지만 과학적으로 이상이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야당의 '후쿠시마 괴담'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야당이 후쿠시마 괴담을 방류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라며 "과학적 근거 없는 황당한 괴담이 거짓 선동으로 밝혀졌음에도 괴담 근원지인 야당은 대국민 사과조차 없이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양 방사능 조사지점을 92개소에서 243개소로 확대했고 수입 신고된 모든 수산물에 대한 생산지 증명서를 확인해 왔다"며 "지난 1년 동안 국내 해역, 공해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4만 96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안전기준을 벗어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 6000억원이 투입됐다"며 "야당이 과학적 근거를 신뢰하고 민생을 위한 정치를 했다면 바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일 수 있었던 혈세"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공포감 증가와 국민 분열로 인해 들어간 사회적 비용은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며 "괴담 피해는 어민, 수산업 종사자 그리고 국민들에
법원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새 이사들에 대한 임명 효력 집행정지 사건의 결론을 26일까지 낼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지난달 31일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위원이 임명된 지 약 10시간 만에 방문진 신임 이사로 김동률 서강대 교수,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 윤길용 방심위 방송자문 특별위원, 이우용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임무영 변호사, 허익범 변호사 등 6명을 선임했다. 이에 권태선 이사장 등 야권 성향 이사 3명과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한 후보자 3명은 '2인 체제'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를 임명한 처분이 위법하다며 각각 취소소송을 내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심리 및 결정에 필요한 기간 동안 임기 만료 예정인 방문진 이사들과 후임자로 임명된 자들 사이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잠정적으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했다"며 신임 이사 6명에 대한 임명 효력을 이달 26일까지 임시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19일 오전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김기중·박선아 이사가 방문진 새 이사들의 임명을 정지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의 첫
이제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불평이 적지 않다. 한국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류 문명의 발전사는 앞선 선각자(先覺者)의 성공문화유전자(meme)가 복제(複製)·전파되는 과정이다. 개인의 발전은 물론 사회, 국가, 문명의 번영은 모두 앞선 선각자의 성공비법(노하우)을 무임 승차하여 배우고 복제함으로써 새로운 번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발전은 그래서 물이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듯이 앞선 선발 문명을 따라 이를 창의적으로 복제한 후발 문명이 선발 문명을 뛰어넘어 그다음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세상은 그래서 문명의 주도 세력은 달라져도-적어도 아직까지는- 꾸준한 발전을 이어온 것이다.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는 공산·사회주의 이념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산업자본주의에서 지식·정보에 기반한 첨단 자본주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모두 다 평등하지는 않지만 끝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뤄내어 인류의 보편적인 삶은 이제 유사 이래 그 유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마치 대장간에서 제조한 마차를 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