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에서 공부하고 근무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서양사람들은 유머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점이다. 하기 어렵거나 상대를 공격하는 말일수록 유머러스하게 얘기한다. 언중유골이다. 어려운 얘기를 할 때 경색되는 한국인들과 다른 점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도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언론들이나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그런 언중유골을 애써 넘어 가기라도 하는 듯이 ‘빵 터졌다’는 식으로 잘 웃어 넘겨 성공적이었다는 식으로 자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서양사람들의 대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환담의 진의를 잘 못 이해하고 있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백악관 오발룸에서의 공개된 대화는 정확히는 회담이라기 보다는 환담이었다. 정작 회담은 환담후 캐비넷룸으로 옮겨 간단한 오찬을 하면서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우선 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며 "한국에서 숙청(purge) 또는 혁명(revolution)"이 일어나는 것 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숙청' 또는 '혁명' 언급은 한국내 내란 특검 수사와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수사 및 재판에 대한 언급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오전 9시20분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이 일어난 것 같다”는 글을 올렸는데 12시15분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2시간55분 앞둔 시점에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백악관 주변은 일순간 술렁였다. 이날 오전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행사가 50분쯤 지연된 것도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문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25일 “한미관계에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충격적 사건”이라고 밝히고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하며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피의 정치보복을 중단하고, 입법 폭주와 사법 유린 등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정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의심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강경 메시지까지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최근 들어 한국 사회 및 정치에 대한 불신이 미국 내에서, 또 국제적으로도 확산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이어 또 “그간 이재명 민주당 정권이 보여준 독재적 국정운영, 내란몰이, 사법 시스템의 파괴, 야당에 대한 정치보복, 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장악이 결국 미국의 눈에 ‘숙청’과 ‘혁명’처럼 비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시간이 흐르면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정상회담은 약 25분 지연된 12시40분에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의 질문에 “한국의 새 정부가 교회에 대해 매우 잔인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우리 군사 기지까지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내 특검 수사 상황을 거론한 것이었다. 순직해병 특검팀은 여의도순복음교회 등을, 내란 특검팀은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과 관련해 오산 공군기지 내 중앙방공통제소를 압수수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사실이라면 매우 나쁜 일이다. 한국답지 않은 일로 들렸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미군을 조사한 것이 아니라 한국군의 통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한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받았다. 이어 “한국은 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이후 정치적 혼란을 극복한 지 얼마 안 됐다”며 “국회가 임명한 특검이 사실 조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다시 긴장감을 높인 상황이 연출된 건 이 대통령의 통역 담당인 조영민 대통령실 행정관이 ‘국회로부터 임명받은 특검’이라고 얘기할 때였다.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혹시 그 특검이 정신 이상자(deranged) 잭 스미스 아니냐” “미국에서 데려간 것 아니냐” “그는 병든 사람(sick individual)”이라는 말을 했다. 조 바이든 정부 때 임명된 잭 스미스 특검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의혹 등을 수사해 트럼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긴 인물이다. 잭 스미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자 공소를 철회했고,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자진 사임했다. 이후 미 정부 특별감찰관실(OSC)은 선거 개입 혐의로 그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 오른 편에 배석해 있던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큰 웃음을 지었고 우리 측에 앉아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회담에 앞서 가진 행정명령 서명식에서도 “최근 며칠간 교회들에 대한 매우 악랄한 정부의 현장단속(raid)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 군사기지에도 들어가 정보를 취득했다고 들었다”며 “그들은 아마 그렇게 해선 안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설명 뒤 “나는 오해가 있었다고 확신한다”며 “교회 압수수색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비공개 회담에서) 논의하겠다. 잘 해결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오해가 있었다고 확신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한국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환담장에서는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으로부터 특검 수사와 관련된 설명을 들은 후 “오찬 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라며 “오해일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교회 급습’ ‘미군기지 압수수색’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특검팀 수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검팀은 필요한 수사를 했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수사가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 자리에서 취재진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언급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라고 묻자 "최근 며칠 동안 한국에서 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한국 새 정부에 의한 매우 공격적인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그들은 심지어 우리(미군) 군사 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며 "그렇게 해서는 안됐을 것인데 나는 안 좋은 일들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순직해병특검팀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경기 가평과 서울의 통일교 본부를 각각 압수 수색을 한 적이 있다. 또 비상계엄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팀은 지난달 미국과 한국 공군이 함께 운영하는 오산 공군기지 내 레이더 시설을 압수 수색을 한 적이 있다.
비공개 오찬 회담 결과 공동선언문도 공동기자회견도 없었다. 비공개회담이 끝나고 이재명대통령이 떠날 때 트럼프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배웅도 하지 않았다. 공항영접도 없었고 만찬도 없었던 데다 공동선언문도 공동기자회견도 없고 배웅도 없이 백악관을 떠나는 모습을 티비화면으로 보는 한국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한미동맹 70여년 사상 유례없는 정상회담 모습에 한미동맹이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