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이해 ‘건국정신과 미래학회’가 미중 패권경쟁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중 패권구도 하 동북아 국제정치 전망’을 주제로 발제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서 ‘강대국 경쟁’이란 자세가 다소 퇴조했다고 진단했다. 2기 행정부의 핵심 기조는 ‘전면적 경쟁의 완화’라며, 미국이 중국과 경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의 강도를 낮추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을 굴복시키거나 봉쇄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대립을 피하는 ‘나름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같은 태도 변화의 배경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맨적 인식이 바탕한 것 아니냐는 설명을 내놨다. 일단 중국의 굴기를 일부 인정하고 체제경쟁보다 거래와 타협을 도모하겠다는 의사표시란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미중 관계는 전략 경쟁이 심화가 불가피하다고도 김 교수는 덧붙였다. 미국이 중국의 장기적 발전과 체제 안전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중층적 관계 하에서 김 교수는 미중 대타협과 국제질서에 세력권 분할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검토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 열강들이 비교적 각자의 명확한 세력권을 나눠 가졌던 질서를 가장 이상적인 국제질서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동아시아에서 일정한 세력권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미국이 대만을 포기할 수는 없고, 중국은 대만을 접수하지 못하는 평화는 ‘굴욕’이기 때문에 이같은 미중간 세력권 분할은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고 김 교수는 전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인도태평양 대중 억지에 대해 한국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작전 사령부 지휘권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갔다. 이는 NATO가 미국 주도의 자동개입 동맹에서 ‘유럽 책임 확대+미국 관리통제형 동맹’으로 변형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마디로 ‘너희 동네는 너희가 지켜라’란 요구인 셈이다.
여전히 한국 내부에선 주한미군의 역할이 한반도를 넘어 지역 억지로 확대되는 데 거부감이 존재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전쟁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자산이 중동으로 이탈하는 것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이 우려를 표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인태 지역에 대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됨과 동시에, 자강과 대미 자율성을 전략적으로 추구해 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제안했다. 또한 ‘핵 잠재력’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피하되, 원자력 산업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능력을 확보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토론에 나선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김 교수가 언급한 ‘세력권 분할 가능성’ 논의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라고 평가하면서, 역시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이란 점에서 미중간 근본적 대타협은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봤다.
이어 유지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전략 경쟁하 동북아 경제안보 관계 전망’을 주제로 발표했다.
유 교수는 “한국과 일본 모두 중국을 수출 시장으로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중국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따른 자체적인 견제와 경쟁 그리고 공급망 구조상 협력이 동시에 필요한 무역 상대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양국 수출통제 조치의 고도화 및 확대 양상은 동북아 지역의 교역 관계 불확실성에 추가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미중 패권 경쟁에 따라 한국의 수출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많이 이동했지만 수입의 규모는 공급망 다변화 정책에 대한 노력이 계속 언급되는 데 비하면 아직 수치상으론 큰 변화가 없다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한국은 일본과 더 많은 교류와 협력 확대를 통해 중국발 및 미국발 통상 변동성과 위험을 완화하며 연대를 다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무역수지와 같은 양적 평가만아 아니라, 양국의 협력을 기술, 공급망, 금융, 인적 교류 등 다양한 방면에서 질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게다가 미국이 자국의 동맹국들에겐 중국과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하면서도 중국과 다양한 거래와 협상을 지속하는 양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유 교수는 “그러한 측면에서 CPTPP 가입 또한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넓히고 통상 세계적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방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토론에 나선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동북아 경제 안보 문제를 논할 때 ‘대만’이란 상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 교수는 “TSMC로 대표되는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과 대만해협의 지경학적 리스크를 논의에서 제외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유 교수는 “미중이 아닌 제3국과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한 건 분명하나 한국, 일본, 대만 간 경제 협력이 어떻게 진행되야 하는지에 대해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현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대외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연구위원은 먼저 “미국의 자비로운 패권은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고, 규칙과 규범이 작동하던 국제질서도 상당부분 훼손됐다”며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던 자유무역 통상질서도 강압적인 통상환경으로 변질됐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이 연구위원은 “한미동맹이 자동적으로 한국 안보를 책임져 줄 것이란 기대를 버리고 자강력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유사 입장 국가군, 즉 G7, EU, 영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캐나다 등과 긴밀한 협력으로 규칙 기반 국제질서 복원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전략은 억지와 안보 즉, 북핵과 미사일, 정보 공유, 확장 억제의 영역에서는 한미동맹 중심으로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했다. 반면 산업과 공급망 측면에선 선택적 다변화와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대해선 조선, 반도체, 원자력, 방산, 첨단 제조역량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해 동맹 내 협상력을 높여야 하고, 중국에 대해선 시장, 중가재, 산업협력, 소비재·서비스 연계 등 면에서 한국의 대체 불가능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건국정신과미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개회사에서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더욱 심화시킬 것과 ‘실력 양성을 통한 당당한 생존’을 강조했다. 8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이 세계사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유진영에 적극 합류하기로 한 결단이 지금의 번영을 가져온 것처럼, 미국의 요구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끼리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유민주주의란 보편적 가치를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날 세미나는 '건국정신과미래학회'와 김건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후원은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나섰다. 김 의원은 세미나 내내 자리를 지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송원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