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추천하는 국가인권위원 선출 과정에서 야당 몫의 추천은 가결됐지만 여당 몫 추천이 부결되며 협치를 중시하는 국회에 큰 불신이 생겼다. 합의 파기는 당장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이익인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론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인권위 추천 안 중 야당이 추천한 이숙진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찬성 281표, 반대 14표, 기권 3표로 선출됐다. 반면 국민의힘이 추천한 한석훈 성균관대 교수에 대한 인권위 위원 선출안은 전체 298표 중 찬성 119표, 반대 173표, 기권 6표로 부결됐다. 죄수의 딜레마가 생각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여당과의 합의를 깨트린 것으로 보인다. 반복적이지 않다면 민주당의 행동은 옳은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표결을 통해 의결하는 국회에서 200석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면 협치는 필수적이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에 따르면, 두 범인이 모두 침묵한다면 각각 최소한의 형량인 1년을 받게 된다. 만약 한 명이 자백을 한다면 자백한 사람은 형량이 없고, 침묵한 범인은 5년의 형량을 받는다. 두 범인 모두 자백을 할 경우 형량은 3년이다. 이런 상황이 한 번만 발생한다
교육감 선거할 때면 항상 올라오는 말이 있다. “교육을 받는 사람이 청소년들인데 왜 교육감을 청소년이 안 뽑고 어른이 뽑냐”는 것이다. 이재정 전 경기도 교육감 역시 “교육감 선거 연령 만 16세로 낮추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게 ‘교육’이 아니며 청소년은 아직 분별력을 키워야 하는 시기에 있기에,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교육감 선거 연령 하향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상황의 학교 드라마가 있다. 청소년이 주인공인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2022), 공교롭게도 19금이라 청소년이 볼 수 없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지금 우리 학교는’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는데,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는 학교와 학생들의 현실을 학생이 아닌 어른이 보고 생각하도록 이끌어준다. 그동안 개봉된 학교 드라마는 청소년들을 주된 시청자로 삼았으나 이 드라마는 결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꼰대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도 그렇듯, 어른들만 볼 수 있더라도 이를 통해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현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결국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좀비와 함께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2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명태균 씨는 제가 잘 안다. 경남 정치권은 다 아는 여론조사 실력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의 국민의힘 공천 개입설’ 진원지인 뉴스토마토는 명태균 씨를 구름 위에 올려놨다. 이 매체는 26일 “윤석열 정부 비선 실세로 의심받는 명태균 씨의 영향력은 여론조사에 기반했다”며 “명씨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측근이었던 E씨 설명에 따르면, 명씨는 '이준석 돌풍'과 '윤석열 등장'의 배후였다”고 썼다. 이 기사 대로라면, 명씨는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그리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정면 출동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모두와 가까운 사이다. 조원진 대표가 '경남권에서 실력있는 여론조사 전문가'로 설명한 인사가, 순식간에 정권의 비선실세이자 동시에 윤 대통령과 척을 졌던 이준석 의원과도 가까운, 이 나라 보수 정치권 전체를 주무르는 상왕 수준에 올라선 것이다. 보도의 요지는 미래한국연구소라는 여론조사 기관의 실질적 운영자인 명씨가, 자체 수행 또는 다른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얻은 여론조사 결과를 가지고 대선 전 윤 대통령과 전당대회 전 이준석 의원(당시 국민의힘 당권
“우리나라가 몇 살일까?” 하고 물으면 “반만년”이라 답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반만년의 역사를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2024) 76년 됐고, 이 한국이 우리나라다. 1919년 건국론자들이 주장하듯 올해를 건국 105년으로 계산하더라도 반만년은 틀린 계산이다. 반만년의 역사, 즉 대한민국 건국 전까지도 모두 포괄한 역사를 말하려면 한국사가 아닌 ‘한반도 역사’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왜 우리나라 나이를 반만년이라 하는 걸까? 우리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선도, 고려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뭉뚱그려, 우리나라가 아닌 나라에 대해서도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는 ‘헬조선’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처음에 만들어진 건 2010년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서다.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헬조선”이라는 말이 향했던 곳은 이씨 조선(1392-1910)이었다. 천민과 여성들을 핍박하고 중국의 속국인 채 계속하여 퇴보하는 조선이 헬(Hell, 지옥)과 같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 단어가 퍼지면서 의미의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조선이
13일 더불어민주당 일부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을 잇따라 펴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대표도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부인했지만 민주당은 “제보와 정황이 있다” “이 정권 어딘가에서 계엄령을 기획하고 있을 것”이라는 등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괴담을 근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만에 하나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한다 해도 헌법상 국회가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하면 계엄은 즉시 해제된다. 민주당과 야권이 192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곧바로 해제될 게 뻔한 계엄령을 대통령이 왜 선포하겠나. 계엄령 해제를 막으려 야당 국회의원들을 체포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의원 체포엔 국회 동의가 필요한데 절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동의해 줄 건가. 김 최고위원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계엄령 준비 의혹’을 두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외계인에 대비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선 "정부와 여당의 모습 자체가 외계적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국회중진으로서
류승완 감독의 이전 작품을 꿰고 있는 누군가가 ‘베테랑2’(2024)를 본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류 감독 특유의 액션신은 변함없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베테랑2’에 담긴 메시지를 보면 다른 사람이 제작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 급진적인 변화가 있으면 찬반이 명확히 갈리듯, ‘베테랑2’도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고 있다. ‘베테랑1’(2015)이 1300만 명의 관객을 확보하며 높은 평점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이 상상 속에서나 원하던 것, 재벌을 무찌르며 카타르시스 느끼는 것을 단순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재벌을 악마화하며 그리는 선악 구도가 억지이긴 해도 대중은 그런 이분법을 좋아한다. ‘베테랑1’이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범죄자가 아니라 선하고 매우 성실한 인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볼 사람만 보는 영화가 됐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재벌이 되기까지 또 재벌의 가족으로 살면서 매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실은 대중이 궁금한 게 아니다.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재벌의 삶을 시기하고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대중 심리를, 류승완 감독은 잘 이용했다. 그런데 ‘베테랑2’에서는 대중 심리를 이
평양 시내에는 ‘통일역’이란 이름의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역 간판에서 ‘통일’이란 이름이 지워졌다. 이 역의 이름은 아직도 그냥 ‘역’이라고 한다. 올해 1월 17일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이후 북한 정권은 ‘삼천리 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동족을 의미하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북한 정권이 어느날 갑자기 ‘남조선’이란 용어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도 같은 것이다. 남한은 동족이 아니라 그냥 외국이란 걸 북한 내부에 선전하기 위함이다. 그럼 북한이 한반도 2국가를 주장하고 통일을 포기했으니 도발 위험도 없어졌는가. 정반대다. 동족이 아니므로 까짓 핵폭탄 좀 쏜다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휴전선 인근에 지뢰를 대량 매설했다는 건 우리 군이 인정한 사실이다. 지뢰밭을 뚫고 인민군이 내려올리는 없겠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핵폭탄은 지뢰밭 위로 날라온다. 대신 한국군이 북으로 밀고 올라가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북한은 재래식 전력으로는 한국군에 절대 열세이니 기
한때 김태호 PD는 MBC 예능의 상징이었다. 폐지 직전의 ‘무한도전’을 맡아 MBC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에 올려놓더니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키워냈다. 예능프로그램으론 드물게 무려 13년간 방송되다 2018년 종영됐지만, 지금까지도 OTT 사이트에서 순위권에 오르는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MBC를 넘어 한국 방송의 한 기점이었다. 순간적인 웃음에 기대던 예능프로그램에서 해를 넘기는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제작진과 출연자가 10년 이상 함께하며 나이 들었다. 시청률과 광고 수주에 따라 정기 개편까지도 못 버티는 프로그램이 비일비재한 방송가에서 ‘무한도전’은 ‘전국 노래자랑’에 비견되는 역사와 탄탄한 팬덤을 자랑했다. 그런 무한도전이 이렇다 할 고별식도 없이 갑자기 종영했고, 이후 김 PD는 MBC에서 새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했지만 결국 MBC를 떠났다. ‘무한도전’의 인기에 힘입어 MBC 사장은 누군지 모르는 시청자도 김 PD는 알고 있었고,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몰라도 김 PD는 기억했다. 스타 PD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도 MBC의 김태호와 KBS의 나영석은 소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타 PD였다. MBC 장기파업이나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