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7 서울시장 보권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후보가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으로 확정되자, ‘나꼼수’ 출신 김어준은 4월 2일 교통방송(T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오 시장 처가가 있는 서초구 내곡동 땅 경작인을 출연시켰다. 그는 "오 시장이 하얀 백바지에 선글라스를 끼고 왔다"며 "생태탕을 먹은 기억이 나는데, 당시 8000원인지 만 원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곧이어 TBS는 내곡동 생태탕집 아들 황모 씨도 출연시켰다. 황씨는 2005년 오세훈 후보가 자신의 가게를 방문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오 시장이 반듯하게 하얀 면바지에 신발이 캐주얼 로퍼로 상당히 멋진 구두였다"며, 구두 브랜드는 "페라가모"라고 했다.
한겨레신문도 나섰다. 황씨는 4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키 크고 멀쩡한 분이 하얀 로퍼 신발을 신고 내려오는 장면이 생각나서 ‘오세훈인가 보다’했는데, 어머니한테 물어보니 ‘맞는다’고 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두 사람을 '의인'이라고 부르며 옹호했다. 민주당 이낙연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은 같은 라디오에서 황씨를 향해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며 칭찬했다. 박영선 후보측 황방열 부대변인은 "생태탕집 가족 같은 분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박영선 후보는 6일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황씨가 오 후보가 내곡동 땅 측량 당시 신었다고 주장한 '페라가모 로퍼' 신발까지 꺼내들었다. 박 후보는 "오 후보가 신었다는 페라가모 로퍼 신발 사진을 찾기 위해 네티즌들이 총출동을 했다. 드디어 어떤 분이 사진 한 장을 찾아 올렸다. 2006년 9월 동대문서울패션센터 개관식 참석 당시 오 후보가 그 페라가모 신발을 신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씨가 언론에 말한 오 후보가 2005년 6월에 신었다는 신발은 ‘하얀색’이었다. 그런데 이날 박 후보가 ‘네티즌들이 찾았다’고 밝힌 신발은 검은색이었다. 박 후보의 발언 이후 이날 언론은 '그 신발이 페라가모가 맞느냐' 진위 공방으로 소모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오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태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식당 주인과 측량팀장, 경작인 등 측량 현장에서 오 후보를 봤다는 일치된 증언이 나온다”며 “공직후보자의 거짓말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반전이 생겼다. TBS 출연 나흘 전인 3월 29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황 씨가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공개된 음성 녹음 내용에 따르면 황 씨는 “난 주방에서 일을 했다”며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랬던 것이 불과 며칠 만에 주장이 바뀐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하루 앞둔 6일 오 후보는 ‘측량 참여 논란’과 관련해 자신이 ‘페라가모’ 브랜드 구두를 신은 증거 사진이 나왔다는 민주당 측의 주장에 대해 “분명히 생긴 것도 다르고 국산 브랜드”라고 직접 반박했다.
오 후보는 이날 은평구 불광천 유세를 마친 뒤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제가 직접 입장을 밝힐 만한 사안인지 어처구니가 없다”며 “그 사진은 언뜻 보아도 주장하는 그 브랜드(페라가모)가 아닌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박영선) 후보가 직접 그런 말씀을 할 수 있나”고 했다.
오 후보측 관계자도 언론에 “사진 속 오 후보가 신은 신발은 페라가모가 아니다. 그 당시 국산 브랜드를 신었다”라면서 “국내브랜드 ‘탠디’로 안다”고 전했다. 탠디는 국내 대표 수제화 브랜드로 1983년 이래 구두 브랜드를 런칭해온 피혁회사다.
한편 과거 박영선 후보가 착용했던 구두가 사실상 ‘페라가모’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찢어진 페라가모 구두 사진을 올리며 “페라가모 구두…”라고 적었다.
박 후보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시절 의원총회에 찢어진 구두를 착용하고 나타나 화제가 됐었다. 조 의원이 올린 사진은 당시 박 후보의 구두를 촬영한 것이다. 해당 구두는 페라가모 제품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역전하자 한겨레신문은 6일 오후 ‘하얀 페라가모’가 언급됐던 해당 기사와 관련, “(생태탕집 아들) ㄱ(황)씨에게 다시 문의한 결과 ‘하얀 면바지에 로퍼 신발’이라 설명한 것을 기자가 잘못 들은 것으로 확인돼 기사 내용을 정정했다”면서 “독자 여러분과 ㄱ씨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황씨는 같은 날 머니투데이 더300과의 통화에서도 “흰색 로퍼라고 한 적이 없다. 어제 어떤 기자에게 전화가 와서 색을 묻길래 검정도, 갈색도 아닌, 검갈색이라고 말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끝나자 ‘생태탕집’ 이야기는 싹 사라졌다.
오 후보는 “나는 내곡동 땅 존재도, 위치도 몰랐다”며 1970년 부인이 결혼 전 상속받은 땅인데 투기 목적으로 40년 간 땅을 보유할 이유도 없었다고 줄곧 반박해왔다. 문재의 핵심은 오 후보가 측량 현장에 갔느냐 안 갔느냐 자체가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적 행위라는데 있다. 내곡동에서 측량이 있었다는 2005년 당시 오 시장은 서울시장도, 국회의원도 아니었다. 내곡동 보금자리지구 사업은 사실상 노무현 정권서 결정돼 이명박 정부로 넘어왔기 때문에, 오 시장이 관여할 여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꼼수와 한겨레신문, 민주당 측은 과거 선거를 앞두고 자주 그래왔듯, 4.7 보궐선거에서도 '생태탕' '페라가모' 등 대중의 관심을 끄는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해 오 후보를 저격하는 여론몰이에 나섰다.
당시 조수진 국민의힘 선대위 대변인은 “여권에 불리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김어준의 뉴스공작’은 당사자나, 익명의 ‘증인’을 내세워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옹호해 왔다”며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4월 7일은 ‘김어준의 뉴스공작’의 폐업과 ‘상식 회복’을 선언하는 날”이라고 호소했다.
오 후보는 4.7 보궐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돼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복귀했다. 오 후보는 57.50%, 박 후보는 39.18%를 얻었다. 두 후보 간 격차는 8.32%p였다. 특히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모두 오 후보가 승리했다.
그는 다음 해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해 최초의 4선 서울시장의 기록을 세웠다.
양연희 기자 takah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