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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을 뒤흔든 희대의 가짜뉴스①] 김대업 정치공작 사건

 

이른바 김대업 ‘병풍(兵風)사건’은 국내 대선에서 ‘가짜뉴스’가 선거 판도를 뒤바꾼 대표적 사례다.

 

김대업 병풍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언론은 오마이뉴스였다. 2002년 5월 21일 오마이뉴스는 김대업의 말을 인용해 ‘1997년 대선 직후 이회창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비리를 은폐하기 위한 대책회의가 열린 뒤 병적 기록이 파기됐다’고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대선 직전에도 ‘한나라당이 제3자에게 돈을 주고 이회창 후보의 아내가 아들의 병역 면제를 위해 병역 관계자에게 돈을 줬다는 김대업 녹음 테이프가 조작됐다는 거짓 진술을 시키려 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김대업은 1961년생 대구 출신으로 군병원 행정업무 담당 의정 부사관(옛 하사관) 출신이다. 1998년부터 검군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에 민간인 수사보조요원으로 참여했다. 김대업은 병역비리, 협박 혐의 등으로 몇 차례 구속된 데 이어 2001년 3월에는 사기혐의로 구속돼 1년 가량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의학지식, 병무행정, 신검기준에 해박한 점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수감자' 신분 상태에서 2002년 2월까지 병역비리 수사반에 몸담을 수 있었다.

 

김대업은 16대 대선을 5개월 앞둔 7월 31일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녹음 테이프가 있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김대업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내가 장남의 병역 면제를 위해 국군수도통합병원 부사관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하면 해당 부사관이 1999년 병역 비리 조사 때 진술했던 내용을 녹음해 둔 것이라며 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했다.

 

당시 언론들은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가짜뉴스’을 ‘받아쓰기’하며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 의혹을 증폭시켰다. 당시 KBS 9시뉴스는 이 사건을 80여 차례나 집중보도했다. 민주당 등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집중 공격했다. 당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11.8%p나 하락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해 10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대업이 증거로 제출한 테이프는 녹음했다는 시점보다 2년 뒤인 1999년 5월 12일 태국에서 제작됐다고 밝혔다. 증거 테이프가 위조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검찰은 이정연 씨 병적기록표 위·변조 여부에 대해서도 "정연씨 병적표가 재작성 또는 위변조됐거나 정연씨 신검부표가 부당하게 파기된 사실은 없다"고 결론냈다. `병역은폐 대책회의'에 대해서도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정연씨 병역문제와 관련해 내부회의를 열고 외부인사를 만난 점은 인정되지만 이를 정연씨 병역의혹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로 볼 근거는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 후보의 장남 정연 씨의 군 면제 사유도 정당한 것이었음이 판명됐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두 달 뒤 제16대 대선이 치러졌다. 근소한 표차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대업은 2004년 2월 대법원에서 무고와 명예훼손, 공무원 자격 사칭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지만 노 대통령 임기 중에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대법원 주심 김용담(金龍澤 대법관)은 한나라당이 “허위 보도로 대선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 었다”며 김대업과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주간지 ‘일요시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인들은 1억 원을 배상하라”며 한나라당에 승소 판결한 원심을 2005년 4월 29일 확정했다. 배상액은 김대업 5천만원, 오마이뉴스 3천만 원, 일요시사 2천만 원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보도를 진실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대선에 영향을 주겠다는 피고 측의 악의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원심 판결문도 “2002년 8월에서 9월경 사이에 실시된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병역비리 의혹으로 인하여 최대 11.8%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시했고 상급심에서도 원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 확정했다.

 

김대업은 15대 대선(2002년 12월 19일)이 끝난 후 2003년 2월 명예훼손 및 무고, 공무원자격사칭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후 2004년 2월 대법원 재판에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10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04년 10월 28일 잔여형기 1개월을 남기고 1년 9개월만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 후 김대업은 강원랜드 등의 폐쇄회로(CC)TV 사업권을 따주겠다며 CCTV 업체 영업이사로부터 2억 5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피소돼 2016년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나 당시 수사 검찰은 김씨가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고 호소하자 치료받을 때까지 시한부 기소지 명령을 내렸고, 김대업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 출석 일정을 미루다 필리핀으로 출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필리핀 이민청은 2019년 6월 30일 김씨를 불법체류 혐의로 붙잡아 수용소에 수감했다. 김 씨는 사기 혐의로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수배된 상태였다. 검찰과 법무부는 필리핀 당국이 지난 7월 말 김 씨를 추방함에 따라 필리핀 말라떼에서 붙잡힌 김씨를 국내로 송환해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했다.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다 해외도피 생활올 한지 3년여만이다.

 

징역형을 살고 나온 김대업은 사건의 가장 큰 수혜자인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을 취임 전과 후에 두 차례 만났다고 했다. 허위 폭로의 대가로 자신이 지급받기로 되어있던 50억원이 중간에 배달사고가 났으며, 모 광역단체장이 착복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있었으나 이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대업 ‘병풍(兵風)사건’의 핵심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허위정보 즉 ‘가짜뉴스’가 실제로 대통령 당선자를 바꾼 것이다. 김대업이 제기한 이회창 후보 병역 비리 의혹은 훗날 완전한 조작으로 드러났지만 제대로 조사와 단죄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도 없었다. 검사 출신으로 2007년 16대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던 3대 허위 폭로 사건을 분석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가>라는 책을 쓴 부산대 법대 정승윤 교수는 이 사건은 김 씨가 수감 중 김 전 병무청장을 대면한 뒤 인터넷매체에 밝힌 준비 및 폭로, 공신력이 약한 마이너 언론 보도를 통한 공론화 시도,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통한 정치 쟁점화, 검찰 수사를 통한 정치 쟁점의 확산, 메이저 언론과 방송을 통한 기정사실화, 시민단체의 유권자 선동을 통한 세뇌화 단계를 거쳤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검찰이 정치공작 사건을 단순히 형법상 개인의 범죄 정도로 축소 기소했다”며 “이회창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 내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상 낙선 목적 허위사실 공표죄에 관련된 내용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관련 가담자에 대한 수사도 눈가림식으로 진행하든지 불기소했다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검찰이 시민단체라며 김 씨의 폭로행위에 적극 가담하고 유권자를 선동한 핵심세력인 ‘민주개혁국민연합’의 대표 이해학 목사를 기소유예 처분하고 효림 스님은 무혐의 처분한 점 △이 후보의 병역비리를 전단지와 책으로 배포한 민주개혁국민연합 관계자들을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가 아닌 단순 불법 인쇄물 제작 배포 행위로 축소한 점을 들었다.

 

또한 김대업은 형기를 채우지 않고 가석방됐다. 정 교수는 “김 씨의 동생 김윤업 씨는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위원으로 채용됐고 민주개혁국민연합은 노무현 정권 탄생 후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핵심 관계자는 요직에 채용돼 큰 혜택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양연희 기자 takah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