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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TG 칼럼] ‘김대중 新한일어업협정이 매국’이란 주장, 나가도 너무 나갔다

신한일어업협정이 '독도 영유권을 해친다'란 비판은
바꿔 말해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일본의 굴복을 받으란 뜻
협정을 파기하자고? 지금 어느 쪽이 죽창가를 부르는가

야권의 친일 공세에 흥분한 일부 보수 진영이 결국 케케묵은 신한일어업협정 논란을 들고 나와 ‘김대중이 친일했다’고 한다. 특히 극단적 성향의 유튜브 등에선 ‘친일이 애국’이라 하지는 못할 망정, 친일이 매국이란 좌파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와 저들의 입장을 오히려 거들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신한일어업협정이 영토 문제와 관련 없다고 두번이나 판시했는데, 일부는 판결을 부정하며 협정을 파기하자는 위험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마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강화시켰다"라고 주장하며 이 협정을 왜곡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협정이 한국에 불리하게 체결됐으니 협정을 파기하자는 반일 몰이로 곧바로 연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상면 서울대 국제법 교수가 최근 ‘독도 본부’란 단체에 기고한 논문부터 발췌해 살펴보자. ‘독도 본부’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신한일어업협정’으로 초래된 독도 영유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했고, 정부와 전혀 접촉하지 않는 순수 민간단체라고 밝히고 있다. 이상면 교수는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에 둔 게 영유권 문제를 촉발시킨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고서 어업협정을 체결한 것은,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와 독도에 대하여 영유권 다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이것은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분쟁상태의 존재를 부인해온 우리 정부의 일관된 정책에 배치되는 것이다. 분쟁상태를 인정한다는 것은 상대국을 분쟁의 상대로서 인정한다는 것이며, 유엔헌장 제2조 3항에 규정된 바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므로, 국가들은 여간해서 분쟁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어업협정에서는 모름지기 어업문제만을 다루어야 한다. 영토문제나 경계획정에 영향을 주는 사항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기자 주: 신한일어업협정은 어업문제만 규정할 뿐 당연히 영토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더구나 분쟁의 불씨를 심거나 경계획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포함해서는 더욱이 안된다. 위에서 살핀대로 신 한일어업협정은 우리 영토인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음으로써 분쟁상태를 인정하는 효과를 빚어내고, 독도에 대한 우리의 배타적 주권행사에 해가 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장차 독도에 대한 영유권에도 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사립대 로스쿨 국제법 교수는 한일어업협정이 ‘영유권 다툼을 인정한 것’은 맞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어업협정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법적 또는 사실적으로 포기한 것으로 전혀 간주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강화시켜 준 것 또한 아니다. 어업 충돌을 해결하는 데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는 것뿐이다. 이 협정이 독도영유권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위 이상면 교수의 논문에서처럼 ‘배타적 주권 행사에 해가 된다’는 것인데, 이 주장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하라고 일본의 무릎을 꿇리라는 말과 다름 없다. 

 

김대중 정부는 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관철시키지 않고 영유권 다툼을 인정한 조약을 일본과 맺었을까.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정부가 있을까. 신한일어업협정은 동해와 독도 주변 해역에서 어업의 평화를 얻기 위해 체결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기 싫었다면 대안은 두 가지였다. 첫째 ‘독도는 한국땅’이란 우리 입장을 일본에 관철시키거나, 둘째, 독도 주변 해역에서 한국 어민과 일본 어민이 어업 중 충돌하는 걸 방치하는 것이다. 일부 보수 세력이 한일어업협정을 두고 매국이라고까지 비난하는 건, 이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다. 

 

이 협정이 독도를 분쟁지역이라고 인정했다는 주장은 애초에 논할 가치가 없다. 공항 가는 전철 객차 안에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4개 국어로 된 영상을 틀어놓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독도 수호 단체가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광고를 틀면 환호하는 게 우리나라다. 이미 독도는 분쟁지역이라고 세계 만방에 홍보를 하면서 왜 어업협정 탓을 하나.  

 

거듭 말하건대, 독도 주변 해역을 '배타적인' 한국 해역으로 만들어 이곳에서 우리 어민이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어업하게 하려면 일본을 굴복시켜야 한다. 보수 진영 일부는 이런 걸 기대하는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느닷없이 독도를 찾아 한일관계가 급랭했던 전례가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언제는 한일이 협력해 북중러에 대항해야 한다면서 이젠 독도 문제로 일본과 한판 뜰 태세다. 자충도 이런 자충이 없다. 그래서 ‘보수’와 ‘애국’은 글자 만큼이나 다르다. 

 

싸우면 닮는다더니 덮어놓고 선동하는 건 누구에게 배웠나. 삼국지에는 ‘적을 너무 미워하면 전투에서 진다’는 명언이 나온다. 진영 싸움에 매몰돼 되레 죽창가를 조국 민정수석보다 목놓아 부르는 게 지금 어느 쪽인지, 참담하다. 

 

첨언하면,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 씨가 주축 멤버였던 대표적 친북매체 통일뉴스가 지난 4월 <독도 영유권 훼손하는 신한일어업협정, 조속한 종료 통고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기고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던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다. 
 

트루스가디언 편집장 송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