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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인민군이 우리 국민 1000명 살육…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 정부 차원 공식 인정

1950년 6월 28~29일 인민군 43사단과 4사단 5연대 소속 북한 인민군 50여 명
서울대병원에서 이틀간 우리 군과 민간인 환자 1000여 명 무차별 학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6.25전쟁 중 자행됐던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을 ‘집단학살’로 규정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은 지난 1950년 6월 28~29일 이틀간 북한 인민군이 서울대병원에서 우리 군과 민간인 환자 1000여명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다.

 

31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진실화해위는 조만간 이번 사건을 의결한 뒤 정부에 북한 당국의 사과 요구 및 피해 구제책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정부 기관이 인정한 ‘적대 세력’이 저지른 단일 학살 사건 중 최대 규모라고 한다.

 

신문은 “(진실화해위는) 내달 초 전체 회의를 열고, 인민군 43사단과 4사단 5연대 소속 북한 인민군 50여 명 등이 1950년 6월 28~29일 서울대병원에서 이틀간 우리 군과 민간인 환자 1000여 명을 무차별 학살했다고 공식 판단할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당시 서울대병원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사건을 목격한 고(故) 유월임씨 조카 최롱(82)씨가 지난 2022년 6월 진실 규명을 신청해 그해 9월 조사에 들어갔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을 조사한 미 극동사령부 ‘한국전쟁범죄조사단(Korean War Crimes Division·KWC)’의 80쪽짜리 결과 보고서에 담긴 북한 포로 및 사건 목격자들 진술 등을 토대로 현장 조사 및 기타 문헌 자료를 비교·대조하는 방식으로 이 사건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사건의 세부 경과도 전했다. 사건이 발발한 시각은 1950년 6월 28일 새벽 1시. 서울로 진입하던 북한군 50여 명은 상부로부터 서울대병원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곳에서 치료받는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환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이었다. 부상이 마찬가지로 심각했던 북한 부상병들을 치료할 공간을 확보하고자 함이었다. 이 학살엔 우리 국민도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전 9시에 도착한 북한군은 먼저 가 있던 서울 성동구 노동당본부 소속 9명에게 다발총과 소총 수십 정을 받았다. 3시간 뒤인 낮 12시부터 북한군은 서울대병원 1~3층 병실 곳곳을 다니면서 환자들을 무차별 총살했다.

 

학살은 이튿날인 29일에도 이어졌다. 새벽 6시 북한군은 입원실에 남아있던 국군 부상병 180여 명을 병원 건물 뒤 야산으로 데려가 몰살했다. 북한군은 국군 시신을 시체 안치실과 야산, 쓰레기장에 방치했고, 일부는 한강변에 묻었다. 병원에서 이런 일이 자행됐던 배경에는, 당시 서울대병원 의료진 상당수가 남로당 소속이었던 데 있다. 이들 다수는 전쟁 중 월북했다.

 

진실화해위는 북한 인민군 43사단 소속 인민군 대좌 이임철, 문화동 임시인민위원회 문화부 중대장 이강국 등 북한군 50여 명을 가해자로 최종 규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학살을 주도한 이강국은 미군에게 붙잡힌 뒤 “(사살 이유는) 그들은 우리 공산주의자들의 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 사건은 이미 미군의 조사 등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던 사건”이라고 전했다. 즉 미국은 알고 한국 정부는 쉬쉬한 사건이란 얘기다. KWC는 1954년 5월 해체되기 전까지 북한 포로 진술, 현지 주민 탐문, 현장 조사 등을 진행했고, 관련 보고서도 외부에 공개돼 있다. 1963년 서울대병원 후문에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自由戰士)비’라는 제목의 위령비도 건립됐다. 그러나 국가보훈부가 이 위령비를 현충 시설로 지정한 건 사건 60여 년이 지난 2012년이었고, 정부 차원 조사는 70여 년이 지난 2022년에야 시작됐다.

 

진실화해위는 유족들 보상을 위한 국회 차원 입법, 정부의 공식 사과 요구, 추모 사업 지원 및 역사 교과서 반영 및 교육을 권고할 예정이다. 박선영 위원장은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엄연한 북한의 학살 범죄를 역사적으로 규명·규정하는 데 의미가 크다”며 “국내는 물론 유엔(UN)과 각종 인권 운동 국제기구들에 결과를 제출해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