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16일 서울 국회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보수의 가치,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보수 정당의 이념, 가치 등 명백히 해서 보수 재건해야” “’87체제’ 희생자들 끌어안고 좌파의 민낯 밝혀야” “민주당, 서사와 정체성 밖에 없지만 여당은 이마저도 없어”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발제는 윤평중 한신대학교 명예교수가 맡았고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 이수봉 민생연대 대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윤 의원은 개회사에서 “4·10 총선 참패에 첫목회(3040모임) 회원들이 당의 반성과 쇄신을 위한 모임을 갖는 거 외에는 공동묘지의 평화 같은 조용한 분위기”라며 “총선 참패가 예견됐음에도 조용하게 있었던 그 비겁함에 분노한다. 이런 분위기에 분노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택동이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에게 '공산당 본부를 폭파하라'고 한 것처럼 우리 당원과 국민이 국민의힘 중앙을 폭파할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전면적이고 창조적인 파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혁신의 타이밍은 바로 이 순간이다. 다음 전당대회를 빠르게 하더라도 7월에 (새 지도부가) 들어와서 혁신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다”라며 “그때 가면 여야 원 구성 협상과 특검법 정국이 펼쳐지며 혁신 동력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현재 보수의 의미가 너무나 왜곡돼 있다. 개혁에 저항하며 책임질 줄 모르고 남북 관계 돌파구도 모르는 수구적인 이미지로 퇴행되어 있다"며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여 하나의 이념이 아닌 실생활에서 오는 정치양식으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평중 교수, "산업화 민주화 이후 공화 혁명이 필요하다."
윤평중 교수는 발제문 '21세기 한국민주주의의 위기와 공화혁명'에서 “총선 참패 이후 본격적인 이중권력 시대가 개막됐다. 한 국가 안에서 두 정치권력이 통치를 두고 다투는 비상 상황"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갈수록 식물정권화되고 거대야당이 폭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은 '이재명 위임정당'이나 다름 없다. 대한민국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이 대표가 임명하는 형국"이라며 "윤 정부 잔여임기 3년은 유사 내란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수구 좌파와 수구 우파가 정면 대립하면서 좌우를 불문하고 법치가 해체되고 있으며 정치 팬덤들이 조장하고 있는 전쟁이 됐다. 통상적으로 수용하는 도덕과 가치 등이 현실사회에서 무시되고 있다”며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사상적으로 공화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가운데 한 분을 대한민국 화폐 초상으로 쓰려고 한다면 국민분열을 일으켜 사회적 혼란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며 “이는 한국 사회가 제대로 공화주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이중권력 상태가 계속되고 팬덤정치 범람에 의한 디지털 포퓰리즘이 악화되면 21세기형 독재가 출현할 위험성이 있다”며 “21세기 한국정치의 최대 위험성 중 하나는 좌·우 포퓰리즘이 디지털 전체주의로 변형돼 현대 폭민정이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은 상호 적대적이었다기 보다는 상호 보완 관계였다는 의식 전화가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돼야 한다는 데 대한 국민들의 보편적 공감대가 부족하다. 지금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출구는 공화 혁명”이라고 했다.
이상돈 교수, “2016년 총선 때부터 보수당은 위기”
이 교수는 '보수를 혁신한다?'는 토론문에서 “2012년 총선에서 한 후보가 ‘종북좌파를 척결하자’고 하자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고 ‘국민통합·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며 이겼다”면서 ‘이조 심판론’에 대해 “한동훈 전 위원장은 (그 후보가 했던 말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 것과 같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는 (중도층은) 그런 얘기 듣기 싫어한다. 정쟁화시켜서는 이익이 없는데 선거 전략을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2012년 총선이 (보수 정당의) 마지막 기회였으며 이를 이어가지 못 했다”며 “2016년 총선은 국민의당이 민주당의 표를 뺏으며 새누리당이 122석을 차지한 것이며 행운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명희 교수, “보수 정당의 이념, 가치 등 명백히 해서 보수 재건해야”
이명희 교수는 “4.10총선 패배는 ‘보수정치’의 실종에 원인이 있으며 보수정치의 실체인 보수정당이 무기력하게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라며 “보수정당의 중심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는 “보수의 중심세력이 국가의 중심 세력이며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과 가치를 기준으로 보수의 중심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며 “정치의 중심에 보수가 설 때 나라는 정상적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보수정당의 이념, 가치 등을 명백히 해서 정당에 새로운 사람들을 영입해서 보수를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평인 논설위원, “하루 아침에 대통령실 이전하는 윤 대통령 보수답지 않아”
송평인 논설위원은 토론문 '겸손하고 온정적인 보수를 위하여'에서 “보수는 모든 것을 다 확실히 알 수는 없다는 인식론적 겸손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개혁을 하되 아는 것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실 이전 장소를 하루 아침에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바꾸는 방식과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실행에만 매달려 군 초급 간부 수급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초래하는 어리석음은 보수답지 않다”며 비판했다.
송 위원은 “오늘날의 보수는 온건 우파, 중도, 온건 좌파의 연대의 다른 이름으로 연대에 힘을 써야 한다”면서 “그러나 가짜 뉴스와 궤변에 사로잡힌 극우파나 극좌파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 부정선거론을 믿는 태극기부대나 김건희 줄리의혹, 윤석열-한동훈 청담동 술자리, 이화영 술판 회유 등으로 정권을 공격하는 좌파 등이 그들이다”라고 했다.
이수봉 대표, “’87체제’ 희생자들 끌어안고 좌파의 민낯 밝혀야”
이수봉 대표는 “보수는 반노동주의와 관념적 시장만능주의라는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반노동주의는 노동자에 대한 전근대적 관점과 이에 따른 권위주의적 행정의 누적은 사회적 불만을 확대시켰고 종북주의나 반체제세력들에게 활동 공간을 주게 됐다”면서 “관념적 시장만능주의는 ‘IMF구제금융사태’를 초래했으며 이 시기 한국에 이식된 신자유주의 체제는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불황과 사회양극화의 주된 원인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87년 체제’는 경제적 측면의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측면의 좌파적 관점의 타협물 형태로 만들졌으나 숙명적으로 급격한 외부환경과 내적 구조의 변화에 작동하기 어려운 체제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며 “’87 체제’가 40여년 동안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들을 보수가 데려오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질 수밖에 없다. 이들을 데려와 좌파들의 위선적인 면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87년 체제’에서 민주당 정권이 경제위기와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10년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권력교체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이유는 상부구조의 정치가 하부구조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대호 소장, “민주당, 서사와 정체성 밖에 없지만 여당은 이마저도 없어”
김대호 소장은 '문제는 보수의 정체성과 국정운영 플랫폼이다'는 제목의 토론문에서 “4·10 총선 한달 전까지는 보수에 유리했지만 결국 참패했다. 이는 3번의 총선에서 나타난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며 “민주당과 진보는 서사와 정체성 밖에 없지만 보수는 이마저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는 1876년 개항 이후 한반도 근대화·문명화를 주도한 정치 세력이라는 자의식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여당은 개화파인 김성수·조만식과 실력양성파인 이승만 전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 등 근대화 혁명가들을 비조로 두고 있다”며 “이들은 친서구, 친미, 반중, 반조선 노선이었고, 국제정세에 밝았으며 부국강병을 위한 실용적인 길을 개척해 왔다”고 했다.
김 소장은 “민주당의 정체성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한반도의 평화,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위해 싸우는 정당으로 정리됐다”며 “보수는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가치 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의 핵심 정체성은 이재명 대표의 ‘쎄쎄’ 발언과 ‘민주당 사당화’로 인해 무너졌으며 서민경제도 파탄나 있다”면서 “여당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폭로하고 있지 않으며 대안적인 보수의 정치가 없다”고 꼬집었다.
심민섭 기자 darklight_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