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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수경 칼럼]부(不)적자생존의 정치-반지성만 판쳐

'떠나야할 사람은 남고, 남아야할 사람은 떠나'
오영환 초선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무엇을 남겼나?
자본과 포퓰리즘의 결합으로 염치와 도덕 사라져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내 싱크탱크인 ‘연대와 공생’은 ‘정치공황의 시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팬덤정치에서 비롯된 극단적 정치 양극화를 목소리 높여 비판했다. 신경민 전 의원은 환영사에서 “‘무당급’ 유튜버들과 팬덤, 가짜뉴스 그리고 저질 지도자들이 결합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어떻게 협치를 복원하고 정치문화를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모처럼 정상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반가웠다. 반지성주의가 집어 삼켜버린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정상적인 이야기를 더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겉과 속이 다른 ‘수박’이라 칭하고 색출에 나서는 극성 팬덤의 반민주적 행태에 “세비에는 욕 값이 포함되어 있다”(정청래 민주당 수석최고위원)고 두둔하는 정치 생태계에서는 정상인이 숨 쉴 공간이 없다. 정치적 극단주의는 지극히 타당한 비판도 진영논리로 오염시킨다.

 

<반지성주의가 들불처럼 번지는 이유는 돈과 표>

한국의 정치판에 반지성주의가 들불처럼 번지는 까닭은 결국 ‘돈’이고 ‘표’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모든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음에도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의혹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정치 생태계라면 여론의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웬걸, 그는 삽시간에 1억 5000만 원의 후원금 한도액을 달성했다. 심지어 가짜뉴스의 피해자였던 한동훈 법무부장관에게는 “땡큐”라고까지 했다.

 

최근에는 정경심 전 교수가 2년간 수령한 영치금이 2억 4000만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보도돼 화제가 됐다. 정 전 교수는 딸 조민씨의 입시에 사용한 이른바 ‘7대 스펙’을 모두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조국 일가에 대한 팬덤은 멈추지 않고 있다. 조국 교수가 쓴 책은 인세 수입만 2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요즘도 딸과 함께 전국을 돌며 북콘서트를 열고 있다.

 

오늘날 정치는 분명 유망 비즈니스다. 지난해 한국의 유튜브 슈퍼챗 순위 1~10위 가운데 7건이 정치 유튜버였다. 참으로 독특한 한국적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단 1명의 정치 유튜버가 4위를 차지했고 일본, 영국 등 나머지 국가에서는 정치 유튜버가 상위에 오른 경우가 거의 없다. 이태원 참사 관련 방송 중 느닷없이 떡볶이 먹방으로 협찬 제품을 판매한 ‘더탐사’도 슈퍼챗으로 2억 4000만 원을 벌어들여 9위에 올랐다.

 

자본주의와 포퓰리즘이 결탁한 정치적 환경에선 염치와 도덕을 아는 자가 살아남기 힘들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진영의 갑옷을 입고 기적의 논리로 맞서 싸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검수완박’을 통과시키려 위장탈당한 민형배 의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에 “복당 약속을 봤느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 하지만 그는 탈당 이후에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민주당의 지방선거 유세 일정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리고는 탈당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라디오에 출연해 “복당해야죠”라고 말했다.

 

언론학자인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민형배 의원의 이 같은 행보를 ‘순교자’라는 키워드로 이해한다. 순교자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본인도 속한 ‘처럼회’를 개혁을 위한 순교자라 자평하면서다. 강 명예교수는 저서 「반지성주의: 우리의 자화상」에서 ‘처럼회’ 가운데 가장 순교자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민형배 의원을 꼽았다. 그는 “순교자가 되는 것은 능력 없이 유명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버나드 쇼의 어록을 소환하면서 “민형배는 광주에 비해 경쟁이 더 치열한 서울에선 보여줄 자신의 능력이 없었던 걸까”라고 되묻고 있다.

 

<상대를 악마화하기 바쁜 현실 정치에서 아무 것도 못 바꿔>

앞서 소개한 ‘연대와 공생’의 포럼이 있던 바로 그날, 소방관 출신의 오영환 민주당 의원은 차기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며 자괴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책임을 인정하는 이 없이 말만 앞세운 개혁이 무슨 힘이 있는지 국민 여러분이 묻고 있다”며 “그 물음에 ‘내려놓음’이라는 답을 적는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2021년 민주당의 재보궐 선거 참패 당시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던 5명의 초선의원 중 하나다. 그는 당시 강성지지자들로부터 ‘초선 5적(敵)’이라 낙인찍히며 문자폭탄은 물론 “배은망덕하다” “매장해야 한다”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중진 의원 중 이들을 보호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패배하고 난 뒤에야 이원욱 의원이 팬덤에 굴복했던 자신이 비겁했다고 고백했을 뿐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의 정치판은 정작 떠나야 할 사람이 악착같이 남고, 남아야 할 사람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상한 곳이 되어버렸다. 적자생존은 본래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지금과 같은 극한의 정치환경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에 부적합한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부(不)적자가 생존하는 희한한 정치. 그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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