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를 활용한 가짜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일부 정치인은 이를 거꾸로 악용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불리한 증거를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라며 잡아떼고 있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여러 말실수를 조명한 광고가 폭스뉴스에 방영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나를 비뚤어진 조 바이든처럼 한심하게 보이기 위해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해당 광고에는 트럼프가 ‘익명(anonymous)’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산불이 난 마을의 이름을 ‘파라다이스(paradise)’가 아닌 ‘기쁨(pleasure)’이라고 잘못 말한 영상이 담겼다. 그러나 해당 광고는 반(反)트럼프·온건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들이 제작한 것으로 기존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내용만 담고 있었지만 트럼프는 이를 AI가 만든 영상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달 총통선거가 치러진 대만에서는 지난해 10월 부총리 격인 정원찬(鄭文燦) 행정원 부원장이 여성과 호텔방에 들어가는 영상이 공개됐다. 정 부원장 측은 “영상이 오래됐고 조작됐다”며 자신은 영상 속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만 경찰에 딥페이크에 대한 포렌식 조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딥페이크 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허위정보를 양산한다는 점 외에도 AI 합성물이 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려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선 정치인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제공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AI 합성물이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모든 일을 그럴듯하게 부인(否認)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세계적으로 AI가 자신의 피해를 막으려는 정치인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AI를 핑계로 비판을 회피하는 사례를 보면서, 더 많은 정치인이 비슷한 주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심민섭 기자 darklight_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