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제의 만행'이라고 하면 명성황후의 피살이나 종군 위안부 및 강제 징용을 떠올린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 우리 겨레에 저질러진 가장 큰 비극은 바로 1923년 9월 간토(關東) 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대학살이다.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 6600여명이 일본인 군경과 민간인 자경단의 손에 의해 끔찍하게 살육당했다.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사가미만(相模薦)을 진앙지로 발생했던 큰 지진이다. 5분 간격으로 3차례 발생했다.
오전 11시 58분은 점심시간이 임박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날 도쿄를 비롯한 지진 피해 지역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각 가정과 요식업소에서 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진이 발생하면서 불이 대부분 목재 건물을 태우며 널리 퍼져나갔다.
도쿄 일원의 간토 지방은 지진으로 인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민심과 사회 질서가 대단히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주민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싹트는 가운데 일본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 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때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황당한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이 아사히, 요미우리 등 신문에 게재됐고 더욱더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신문에 다시 실리면서 “사회주의자들의 교시를 받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헛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조선인들이 일본에 지진 일어나게 해달라고 일본에 저주를 퍼부었다”라는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일제는 이러한 조선 사람들을 불령선인으로 불렀다.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이라는 뜻이다.
1923년 9월 10일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보더라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기사가 도배질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언비어가 전국적으로 나돈 것은 일본 신문들의 조작된 오보 때문이다.
당시에는 지진으로 인하여 물 공급이 끊긴 상태였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일본 주택의 특징때문에 일본인들은 화재를 두려워했으므로, 이러한 소문은 진위 여부를 떠나 조선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했다. 이에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했고, 일부는 총기를 휴대하기도 했다. 우선 조선 복장을 한 사람은 현장에서 바로 살해했으며,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내기 위해서 이들에게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 단어 등을 읽게 한 뒤 발음이 이상하면 역시 현장에서 살해했다.<서옥식의 가짜뉴스의 세계에서 발췌, 저자는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대한언론인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