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25.4℃
  • 흐림강릉 23.9℃
  • 흐림서울 26.2℃
  • 구름많음대전 25.5℃
  • 구름많음대구 26.4℃
  • 구름많음울산 26.5℃
  • 구름조금광주 26.4℃
  • 구름조금부산 29.9℃
  • 구름조금고창 26.3℃
  • 맑음제주 29.2℃
  • 흐림강화 26.0℃
  • 구름많음보은 23.7℃
  • 구름많음금산 24.3℃
  • 구름조금강진군 28.1℃
  • 구름많음경주시 26.2℃
  • 구름조금거제 28.0℃
기상청 제공

[서옥식의 가짜뉴스 팩트체크 50]⑨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맥아더의 포고문을 오해해 좌파들이 점령군(미군)과 해방군(소련군)으로 규정
소련군의 포고문은 정치적 수사, 소련군은 온갖 약탈과 만행 저질러

1945년 8.15광복 직후인 9월7일 남한에서 발표된 맥더(Douglas MacArthur)장군의 포고령 제3조를 영어원문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All persons will obey promptly all my orders and orders issued under my authority. Acts of resistance to the occupying forces or any acts which may disturb public peace and safety will be punished severely.

 

(모든 주민은 본관과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표한 명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행위 또는 공공안녕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도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 치스차코프(Ivan Chischakov) 대장의 포고문은 “조선인민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당신들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죄다 당신들에게 달렸다. 붉은 군대는 조선인민이 자유롭게 창작적 노력에 착수할 만한 모든 조건을 지어주었다. 조선인민 자체가 반드시 자기의 행복을 창조하는 자로 되어야 할 것이다”로 번역, 소개됐다.

 

종북좌파들은 occupying forces(점령군)라는 표현을 문제삼아 미군을 '점령군’,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규정했다. 상당수 학습서에 미군이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여과없이 실리고 좌경화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점령군 미군’이라는 제목으로 글짓기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occupying forces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점령군이 맞다. 객관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소련이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소련이 해방군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그리고 여기서 ‘obey는 ‘복종하다가 아니라 ‘준수하다’로 번역해야 옳다.

 

이 포고령과 포고문은 각각 말미에 ‘1945년 9월 7일 미국 태평양방면 육군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평양, 1945년 8월 20일 제25 조선점령군사령관 근위대 대장 치스차코프’라고 쓰여져 있다.

 

맥아더의 포고령이 군정 수립이라는 현실적 상황에 직면하여 한국인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한 것인데 반해 소련의 포고문은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해 고도의 미사여구를 구사한 정치적 선동 수단이자 수사에 불과한 것인데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것이다. 소련군이 해방군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의 자체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소련군은 그들이 진주했던 북한 지역에서 온갖 약탈과 만행을 저질렀다.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5개월간 방문조사한 뒤 만든 13쪽짜리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소련군의 약탈 상황은 극에 달했다.

 

이 보고서는 연해주 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 칼라시니코프 소련군 중장에게 보고됐고, 이듬해 1월 11일엔 연해주군관구 군사회의위원인 스티코프 상장에게도 전달됐다. 러시아어 필사본인 이 문서는 미국의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옛 소련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뒤 영어로 번역했다.

 

페드로프 중좌는 당시 '붉은 군대’의 만행에 대해 “우리 부대가 배치된 시나 군 어디서나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며 “특히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가 만연해 있었다”고 지적했다.

 

맥아더가 점령군 사령관인지 아닌지는 그가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의 성공으로 수도 서울을 탈환(9월 28일)한 다음날 중앙청 앞에서 거행된 서울탈환 기념식에서 행한 다음의 연설 구절에서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맥아더는 미군 병사들이 서울탈환기념으로 중앙청에 성조기를 게양하려하자 대한민국이 주권국임을 강조하며 한국군으로 하여금 태극기를 게양토록 했다.

 

부산에 피난 중이던 이승만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와 참석했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의 상징인 UN의 깃발 아래서 싸우는 우리 군대는 이 대한민국의 수도를 해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공산주의자의 전제적 지배에서 해방되어 그 시민은 다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첫째로 하는 부동의 인생관 밑에서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유엔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본인은 각하(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귀국 정부의 소재지를 회복하고 이에 의하여 각하가 헌법상의 책임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 학보사 인터넷에는 아직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돼있다. “맥아더는 점령군이었다. 맥아더 장군의 포고령에서 알 수 있듯 해방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맥아더 장군의 군대는 '점령군’이었다. ‘조선 인민은 자유와 독립을 찾았으며 이제는 모든 것들이 여러분에게 달렸다’라는 북쪽 사령관 이반 치스차코프의 포고문과 소련 군대가 점령군이 아닌 주둔군이었음올 상기한다면 이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일 것이다.”<서옥식의 가짜뉴스의 세계에서 발췌. 필자는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대한언론인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