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에 대해 여당과의 타협 가능성을 밝히자, 친야권 성향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장시간 노동이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퇴행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조선일보와 매일경제는 이 대표의 발언을 환영하며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더 이상 노조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4일 <주 52시간제 허무는 게 민생이고 혁신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전 세계적 반도체 전쟁 속에 국민경제에서 비중이 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는 시급하지만, 장시간 노동이 그 해결책인지 의문스럽다”며 “장시간 노동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낡은 발상 자체가 혁신을 막는 것임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설은 삼성전자의 위기에 대해 “반도체 패러다임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투자 타이밍을 놓친 것도 결정적 원인”이라면서 “그런데도 주 52시간 노동 규제 탓을 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선의 기업부터 정부까지 기존의 임금 경쟁력에 기반한 수출주도 경제에 집착해선 절대 돌파할 수 없다”며 “주 52시간 노동 규제를 허물어 노동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땐, 오히려 인재 유출 우려만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도 이날 <이재명표 실용이 '주 52시간' 완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라는 사설에서 “만일 이 대표가 노동시간 규제를 허무는 법안의 국회 통과에 힘을 싣는다면, 이는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고 노동자 휴식권을 빼앗는 퇴행적 정책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설은 “주 52시간 예외 논의는 실익이 없을 뿐더러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노동시간 규제를 허물 수 있다는 잘못된 정책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삼성전자 등에서 근무한 복수의 연구개발 노동자들은 경영 전략의 부재가 근본 원인인데 노동시간을 늘려 반도체 위기를 극복한다는 발상은 안일하다고 반박한다”고 전했다. 이어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외려 우수 인재가 유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고 부연했다.
조선일보는 <'몰아서 일하면 안 되나' 李 대표, 이 상식 왜 외면했나>라는 사설을 통해 “연구직은 업무 특성상 주 52시간을 주 단위가 아닌 월이나 분기, 반기 단위로 적용하자는 것은 누구도 손해 보는 것이 없는 합리적 방안”이라면서 “이 대표와 민주당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어떤 예외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노조의 반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설은 “반도체를 핵심 전략 산업으로 일궈온 한국이 이렇게 중대한 시기에 ‘탈레반식’ 주 52시간제라는 족쇄에 묶여 있을 수는 없다”며 “이 대표가 민노총 등 지지 세력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주 52시간제 개혁의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밝혔다.
매일경제는 <李, 딥시크 쇼크에 '주 52시간' 예외 착수 … 다행이지만 씁쓸>이라는 사설에서 “K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지만 '왜 이제서야'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라며 “그동안 민노총 등 노동계가 예외 적용에 강력 반대하고 다수당인 민주당도 노동계 눈치를 보며 법안 처리를 미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설은 “제조 분야에선 대만, AI 분야에선 미국과 중국에 밀려 K반도체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며 “특히 '주52시간'은 경쟁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R&D 분야는 노동 유연성이 중요한데 주52시간 근무제를 강요하는 것은 인재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사설은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자 이 대표는 중도층을 껴안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진작에 할 수 있었던 변신이다. 사회적 갈등을 키우고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은 뒤에야 '실용'을 외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동아일보는 <'반도체 주 52시간 예외' 입법, 李 실용주의 전환 시금석 될 것> 이라는 사설을 통해 “최근 이 대표가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우클릭’ 행보를 가속화하는 것도 힘을 보탠다”라고 밝혔다.
사설은 이 대표에 대해 “추경 편성에 문제가 된다면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주는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 했고, 중국 인공지능(AI) ‘딥시크 쇼크’가 강타하자 AI 개발 지원을 위한 추경을 요구하며 성장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대표의 태도 변화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신성장동력의 불씨를 점화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심민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