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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오정근 칼럼]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 법 개정 필요하다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일 ‘공직선거법 개정 토론회’ 서면 축사에서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있다면서 현행 공직선거법의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자신에게 적용된 법률을 탓하는 건 상상도 못 한 수준의 꼼수”, “약물 복용으로 적발된 운동선수가 도핑 테스트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등의 논평을 잇달아 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법치 파괴를 넘어 법치 재창조 수준의 뇌 구조”라고 비판했다.

 

공직선거법의 개정 주장만 하기는 너무 의중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는지 이 대표는 이날 배임죄 폐지, 배당소득 분리과세 검토 발언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간 당내 금기로 꼽혀 왔던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완화 가능성을 처음 시사하는 등 경제 분야 발언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완화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문재인 정부 때 도입된 두 법률을 두고 이 대표가 검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형법에 규정된 배임죄에 대해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받고도 항소 당해서 재판 끌려다니는데 의사결정이 되겠냐”며 “검찰이 심심하면 기업을 내사해서 ‘배임죄 한번 조사해 볼까’ 이러면 경영이 되겠냐”고 사실상 폐지 입장을 드러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기업 반발이 커지자 일종의 유화책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재판과 상관없이 최대한 민생 행보에 집중해 반등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공직선거법 1심 유죄 판결에 이어 더 큰 고비로 평가되는 25일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를 앞두고 민생 행보로 본인의 사법 리스크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작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은 기업인들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고용·노동 등 37개 법률의 형사처벌 조항을 분석한 결과 징역·벌금 등의 형벌이 부과된 432개 항목 중 64.8%인 280건이 사업주나 사용자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법 등 8개 법률은 아예 형사처벌 항목 42건의 처벌 대상이 모두 사업주이다. 고용·노동 관련 법의 형사처벌 항목 10건 중 6건이 기업인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16개 주요 정부부처 소관의 기업활동 관련 법률 수가 300개가 넘고, 이로 인해 부과되는 형벌 조항 수는 6568개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다 보니 위법을 저지른 사람 외에 관련 법인과 개인까지 함께 처벌하는 양벌(兩罰)과 중복 처벌 등이 보편화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정부 부처별 경제 법률 형벌 조항'을 보면 12개 부처 기업처벌법의 90% 이상이 양벌 규정을 갖고 있다. 또 금융위원회 소관 형벌의 71%는 징역·벌금을 동시에 부과할 수 있고, 기획재정부 소관 형벌의 25%는 징역·벌금·몰수가 함께 규정돼 있다. 그 밖에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형벌의 78%는 형벌(징역·벌금)과 과징금을 중복해서 적용할 수 있다. 전경련은 "입법과 형벌 조항 추가가 무분별하게 이뤄지다 보니 기업인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듯 경영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특히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범법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형벌 조항 수 못지않게 기업인들의 목을 죄는 건 형사처벌 강도다. 예를 들어 포탈세액이 연 10억원을 넘기면 조세포탈죄에 따라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그리고 포탈세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 벌금을 부과 받는다. 징역형 남발도 큰 문제다. 기업 회계 담당자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거짓으로 작성해도 마찬가지다. 변경 금액이 자산총액의 10%가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이는 형법상 직계존속 상해치사 형량과 동일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주 52시간제, 화학물질 관련 규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기업을 범죄자로 모는 법들이 줄줄이 만들어지면서 산업계에서는 “기업인 전과자를 양산하는 과잉 형벌이다” “감옥에 안 가려면 ‘바지 대표’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 등의 탄식까지 나온다.

 

재계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가장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는 형벌은 형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죄다. 형법 355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특경가법은 배임을 통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50억 미만일 때는 3년 이상 징역,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보통 법정 형량이 '3년 이상 징역'이면 집행유예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 사이에선 배임죄가 가장 무서운 형벌 중 하나로 꼽힌다.

 

문제는 배임죄 요건인 '임무 위배'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수사기관들이 기업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배임죄를 자의적으로 적용하거나 남발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배임죄로 법정에 섰다가 법원에서 무죄를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선 배임죄에 대한 판단이 엄격하다. 중요한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기업 총수들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과잉처벌을 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제 형벌조항이 기업의 사기를 위축시키고 국내 투자도 약화시킨다는 게 재계의 하소연이다. 정부는 이참에 기업인들을 교도소 담장 위에 세우는 형사처벌 규정을 전면 손질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도 노조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노란봉투법’ 강행 등의 역주행을 접어야 한다.

 

비리와 불법을 저지른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부의 반(反)기업 정서를 의식해 과도하게 경영자를 처벌하면 투자와 혁신 의욕을 꺾고 결국 기업의 고용 창출·유지 노력을 위축시키게 된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27위로 하위권에 맴돌게 된 것도 기업인에 대한 과잉 처벌의 영향이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인의 가벼운 법 위반에 대해 과도하게 부과되는 형사처벌을 과태료, 사업 정지 등의 행정 제재로 바꾸거나 폐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계도 이에 맞춰 기업 경영을 제약하는 형벌규정 31건을 포함해 총 121건의 규제개선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된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비롯해 국제노동기구(ILO) 관련 노동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주요 개선 대상 법률로 특정해 제안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대표가 언급한 배임죄 폐지, 배당소득 분리과세,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완화 가능성을 처음 시사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며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정치인들이 허위사실을 전파하며 활개치고 다니며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도록 하기보다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업인들을 줄여 기업가 정신을 맘껏 발휘해 복합 위기 극복과 경제 살리기 여건 마련을 위한 입법에 적극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여야는 인식해야 한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