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해병대원 특검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면, 정부는 헌법상 대통령 권한으로 해병대원 특검법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채상병 특검법)에 관해 "의결 과정이나 특별검사의 추천 방식 등 내용적인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국회의 입법권이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본원칙에 반한다면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권한 내에서 의견을 개진할 책무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 총리는 "특별검사는 헌법상 행정부의 권한인 수사권과 소추권을 입법부의 의사에 따라 특별검사에 부여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 헌정사에서 항상 여야 합의 또는 정부의 수용을 전제로 도입돼 왔다"며 "그러나 이번 특검법안은 절차적으로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고, 내용적으로 특별검사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 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과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의 추가 수사가 개시되기도 전에 특별검사를 도입해 특별검사 제도의 '보충성·예외성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수사 대상을 고발한 야당이 수사 기관‧대상‧범위를 스스로 정하도록 규정한 대목도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는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현행 사법 시스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밖에도 본 법안은 편향적으로 임명된 특별검사가 실시간으로 언론브리핑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수사대상에 비해 과도한 수사 인력이 편성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점을 감안해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국무위원들과 함께 본 법안에 대한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는 안건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께 건의드리도록 하겠다"며 "정부는 채 해병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일에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했으며 7일 정부로 이송됐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해병대원 특검법안을 가결했다. 이 법안은 민주당이 고른 2명 중에서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도록 하고, 특별검사가 채 해병 사망 사건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사령부, 경북지방경찰청 내 은폐, 무마, 회유 등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와 관련된 불법행위” 및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을 수사하도록 했다. 수사 대상에는 채 해병 사망 사건에 대한 첫 조사·처리를 수행한 군사경찰과 군검찰단, 군법무관 등도 “사건 관계자”로 포함됐다. 또 특별검사에게는 특별검사보 3명과 특별수사관 40명을 임명해 쓸 수 있게 하고, 검찰·경찰로부터도 40명을 파견받을 수 있게 해, 최대 84명에 달하는 대규모 수사팀을 꾸리게 했다.
국회는 해병대원 특검법안이 돌아오는 대로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재표결 시기는 국회의장이 정한다. 재표결에서 해병대원 특검법안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면 대통령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부결되면 법안은 폐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이른바 ‘방송 3법’), ‘50억 클럽’ 특검법안,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등 9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은 여야 합의로 일부 내용을 수정해 가결돼 법률이 됐고, 나머지 8개 법안은 재의결에서 3분의 2를 확보하지 못해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