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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의 엔터 비평]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흥행에도 눈물 흘리는 K 드라마

시청률 24.9%를 기록한 인기작이지만 톱스타 출연료에 제작비 편중, 대중 예술에는 자본주의만 남나? 가성비 높은 드라마가 대박 드라마보다 환영받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제작비 400억 대작 드라마로 홍보하며 시작했던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극본 박지은, 연출 장영우 김희원)이 560억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대중적 인기가 워낙 높아 24.9%라는 놀라운 시청률로 성공하다보니 막대한 제작비는 시청률에 가려져 홍보 수단으로 치부되고 있다. 수백억의 제작비를 아깝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건 드라마에 강한 tvN에서도 최고 시청률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대중적 인기만으로 수백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미화해도 당연한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예고된 화제작, 꽃길을 걷다

 ‘별에서 온 그대’부터 최근작 ‘사랑의 불시착’까지 연이은 히트작을 만들어 냈던 박지은 작가의 신작으로, ‘눈물의 여왕’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대를 모았다. 수백억의 제작비에다 조연급 배우도 인지도 있는 중견 배우들로 캐스팅 됐고 잠깐 출연하는 카메오마저 송중기 오정세 등 타 작품 주연급으로 넘쳐났다. 홍진경과 조세호, 남창희 등도 카메오로 기꺼이 등장해 웃음도 더했다. 이처럼 ‘눈물의 여왕’은 스타 작가의 대본에 인지도 높은 배우와 카메오의 출연으로 흥행이 이미 예견된 화제작이었다.

 

▲로맨스에 개그 양념치고, 복수로 매운 맛 더해 운명으로 완성하다

 외모와 실력, 인성까지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 미모의 재벌3세 여자를 재벌인지 모른 채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기본 줄거리는 대리만족 로맨스에 불을 질렀다. 거기다 연애 과정이 아니라 이미 결혼한 주인공 커플이 이혼을 고민하게 되면서 과거 스토리가 하나씩 공개되어 호기심도 자극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하는 과거 연인이 등장하고, 재벌가에선 사라졌던 가족애가 복원되는 과정도 담겼다. 심쿵 로맨스에 복수, 거기다 시의적절한 코미디까지 더해져 단짠단짠에 설탕까지 버무린 맛깔 나는 드라마였다.

 

 ▲과연 꽃길만 걸을까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다. 대중은 늘 겪는 일상이 아닌 현실과 다른 판타지를 드라마를 통해 간접체험하길 원한다. 평범한 내 남편이나 흔한 내 여자친구 보다는, 현실에서 만날 리 없고, 날 사랑할 확률은 더욱 없는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환상을 팔아야 드라마는 성공한다. 이런 '환상팔이' 공식에 충실해서라도 수백억의 비용이 들고 방송사의 명운이 걸린 작품이 성공해야하는 것은 자본주의 미디어시스템에서 당연한 숙명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아니더라도 SF(science fiction)같은 공상과학 드라마여야 했느냐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차에 치이고 총에 맞아도, 죽지도 다치지도 않는 히어로의 탄생

 비현실을 팔아 성공한 ‘눈물의 여왕’이지만, 주연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아쉬운 대목이다. 명문대 출신의 전문직 남편이 너드남(nerd男)이 아니라 특수부대 출신의 만능 스포츠맨이어서, 여주인공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목숨 바쳐 구해내는 완벽남이라는 설정으로 드라마는 시작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 시절에도 이미 여주인공을 익사위기에서 구한 생명의 은인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완벽한 남자였고, 모르고 결혼했는데 이미 내 목숨을 구한 적 있는 남자가 총알을 대신 맞으며 영원히 날 지킨다는 서사는 16부작 내내 이어진다.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맨 주먹으로 자동차 유리를 깨는 서사는 극 말미에는 더욱 심해진다. 차에 치여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입원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홀로 눈 덮인 산을 오르는 장면은 비현실을 넘어 초인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차에 치였는데 골절은 커녕 출혈도 없이 산길을 오른다.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로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차에 치이고도 여주인공에게 달려 간 남자는 여자를 향해 쏜 총알을 대신 맞고도 멀쩡히 살아난다. 백현우는 슈퍼맨+배트맨+아이언맨 이었다. ‘눈물의 여왕’ 백현우가 아니라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 이었다. 그는 외계인이었다. 그런 외계인 같은 남자가 한 눈 안 팔고 오로지 한 여자만 사랑하고, 그 여자가 나라서 날 구하러 온다는 환상은 시청자를 세뇌했고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사랑하기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감동의 정점으로 시청자를 끌고 갈 순 있었을지 모르나, 지나친 비현실성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상로맨스가 현실로맨스로?

 작가의 전작 ‘사랑의 불시착’의 주연 현빈, 손예진은 종영 이후 결혼해 현실 로맨스를 실현했다. 드라마 기획 이전부터 데이트 사진이 공개되고 연애 중임이 확실해 보였음에도 두 배우는 아무런 설명이나 해명 없이 ‘사랑의 불시착’을 촬영하고 결혼했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사랑에 빠졌다는 예쁜 러브스토리가 완성됐다.

 

 연예인 스캔들 공개로 인지도를 쌓은 ‘디스패치’가 김수현과 김지원이 결혼각이라는 점술인 인터뷰를 기사화 했을 때, 디스패치의 전공인 데이트 현장 공개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동일 장소에서의 사진이나 같은 포즈의 사진을 두 배우가 각자의 SNS에 업로드 하자,  두 사람의 러브 시그널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었다.

 

 사실 관계를 떠나 가상 로맨스가 현실 로맨스로 이어지길 바라는 드라마 팬들의 바람이 투영된 예측이고, 이런 기대를 방송사와 유통사에서는 열심히 부채질하고 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하고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한 비즈니스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톱스타 제작비 편중 현상, 대중 예술에는 그저 자본주의만 남나

 수백억의 제작비가 홍보를 위해 부풀려진다는 추측은 고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에는 늘 따라 다닌다. 실제 제작비 보다 더 많은 금액으로 홍보해 대작 드라마/영화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해외배급, OTT 공급시 가격을 높이는 전략이다.

 

 실제 제작비가 얼마이든 배우 간의 출연료 차이, 제작 스탭과의 임금 차이는 항상 문제점으로 제기 된다. 성패에 따라 막대한 이익과 손해가 뒤따르는 미디어 콘텐츠 특성상 스타성 있는 배우를 선호함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문제는 톱스타 주연에게 출연료가 너무 많이 책정되다 보니 조연, 단역들의 출연료와 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여기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단역, 엑스트라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느껴야한다는 점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청춘과 인생을 거는 배우의 삶은 성공 이후 높은 출연료로 보상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밤새며 땀 흘리는 보조스탭도 작품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 더 희생할 것이라는 점에서 제작 스탭과 무명 배우의 임금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할 때가 됐다.

 

▲예쁜 재벌은 늘 사랑 받는가

 ‘눈물의 여왕’의 홍혜인(김지원)은 미모의 재벌3세다. ‘사랑의 불시착’의 여주인공 윤세리(손예진)는 미모의 재벌2세다. ‘별에서 온 그대’ 여주인공 천송이(전지현)는 어렸을 때부터 스타로 살아온 미모와 재력을 갖춘 톱스타이다. 예쁘고 잘 생겨야 로맨스가 빛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왜 여주인공은 꼭 부자여야 할까.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99%의 시청자들은 홍혜인 재산의 1%만큼도 소유하지 못한 평범한 서민들이다. 사랑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드라마를 현실과 혼돈할 만큼 아둔하진 않겠지만, 계속 반복되는 예쁜 재벌녀 설정을 바꿔볼 때도 된 것 같다.

 

 홍혜인 역의 김지원 배우가 출연한 전작 중에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 작품에서는 재벌 3세가 아닌 달동네에 사는 가난한 백수였다. VIP 고객의 갑질에 시달리다 백화점 안내직원을 그만 두고 잊고 살던 꿈을 이루려 다시 노력하는 캐릭터였지만 흥행과 평이 모두 좋았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는 돈 없고 빽 없는 격투기 선수, 홈쇼핑 전화상담원 등이 등장인물 이지만 13.8%의 시청률로 종영했다. ‘눈물의 여왕’만큼 높은 시청률과 인기는 아니었지만, 제작비 또한 ‘눈물의 여왕’만큼 많이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성비 높은 드라마가 대박 드라마 보다 환영 받는 미디어 생태계를 기대해 본다.

 

<전문기자, theMedia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