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방송은 18일(현지시간) 2022년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공개재판 영상을 공개했다.

BBC가 탈북자들을 연구하는 한국의 샌드연구소(SAND·South And North Development)로부터 제공받은 희귀 영상에는 북한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다는 이유로 두 명의 10대 소년에게 공개적으로 12년의 노동형을 선고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2022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서 16세 소년 두 명은 야외 경기장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 앞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있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소년들을 질책하는 장면도 담겼다.

해당 영상의 해설자는 “지금 썩어 빠진 괴뢰문화는 학생소년들에게까지 전파되어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반동사상문화의 희생물들로 만들고 있다”며 노동형을 받은 학생들에 대해 “겨우 16살밖에 안되는 미성년이다. 인생의 초엽에 있다”며 “그런데 외래문화에 유혹돼서 분별없이 돌아치다가 끝내는 자기 앞길을 망치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경찰관들은 소년들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했다.

BBC는 “북한에서는 TV를 포함한 남한의 엔터테인먼트가 금지됐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K-드라마를 접하기 위해 엄중한 처벌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또한 “해당 영상은 북한에 사상교육과 '퇴폐녹화물' 시청을 자제하라는 경고 목적으로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는 당국이 그러한 사건에 대해 더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BBC는 북한에 드라마 등 한국의 오락물이 유입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한국의 ‘햇볕정책’ 이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햇볕정책이 2010년 북한 행동에 어떠한 긍정적 변화도 초래하지 않았다면서 정책을 종료했지만, 한국 오락물은 중국을 통해 계속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샌드 최경희 대표는 BBC에 “북한이 K-드라마와 K-팝의 확산을 북한 이념에 대한 위험으로 보고 있다”며 “남조선 사회에 대한 존경심은 곧 체제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를 존경하게 만드는 획일적 사상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의 한 탈북민은 BBC에 “(햇볕정책) 당시 북한은 한국문화가 퍼지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이렇게까지 유행할 거라 예상도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걸리면 뇌물을 주고 빠져나올 수 있지만 남한 드라마를 보면 총에 맞는다”며 “남한 드라마는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약”이라고 말했다.

다른 20대 탈북민은 “북한에선 남한이 우리보다 훨씬 못산다고 배우지만 남한 드라마를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라며 ‘북한 당국이 그 점을 경계하는 것 같다”고 BBC에 말했다.

양연희 기자 takah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