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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개발 연구자들, 기술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과기부 긴급 감사...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관련 기술정보 담긴 하드디스크를 대전 항우연에 있는 컴퓨터에서 떼어낸 것으로 확인

 

‘누리호’ 개발에 참여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이 기술유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민간기업으로 이직하기 위해 퇴사절차를 밟던 연구원들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술유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정부와 과학기술계 등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기술유출 의혹으로 항우연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결과, 항우연 연구자 4명을 고발 조치했다. 이들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관련 기술정보가 들어있는 하드디스크를 대전 항우연에 있는 컴퓨터에서 떼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기술자료를 특정 시기에 과도한 횟수로 열람한 것도 확인됐다.

 

고발된 연구자들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기 위해 하드디스크를 떼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술자료 열람도 여러 번의 인쇄 등으로 횟수가 누적됐을 뿐 연구목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 측은 하드디스크를 떼어내고 집중적으로 자료를 열람한 시점이 누리호 발사 성공 뒤인 올해 5월 이후라는 점에서 연구자들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우연도 VPN(가상 사설망)을 활용해 내부 클라우드를 이용해면 하드디스크를 옮기지 않고도 대전과 나로우주센터에서 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는 항우연 내부 제보로 시작됐다. 내부자가 기술유출 의심정황을 신고하자 과기정통부는 지난 13일 감사에 나섰다.

 

과기정통부의 긴급 감사 결과 항우연은 내부 기술정보 관리가 심각하게 부실한 상태로 드러났다. 기술정보가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아무런 제재 없이 외부 반출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자료 열람도 제한 없이 이뤄졌다. 항우연 규정상 중요 기술정보가 들어 있는 하드디스크는 허가 없이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당연히 중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감사 결과 이런 원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항우연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는 탈착을 막기 위해 시건장치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이 시건장치를 풀고 하드디스크를 떼어냈고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외부로 반출하기도 했다.

 

과기정통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감사조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항우연 연구원들을 채용하려 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들에 대한 채용을 보류했다. 과기정통부는 기술 유출 의혹을 받는 항우연 연구자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기술 유출에 무감각한 분위기는 비단 항우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에 만연해 있다. 정부 출연연은 연구원들이 민간기업이나 해외 기업으로 이전할 때 기술 유출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춘 곳이 전무하다. 이번에 항우연에서 일어난 하드디스크 반출 사태도 내부 시스템을 통해 적발된 것이 아니라 내부 고발자가 있어서 드러났다.

 

최근 민간기업을 비롯해 외부로 떠나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늘고 있다. 과기정통부 산하 25개 출연연을 관장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이직 등에 따라 자발적으로 출연연을 퇴직한 인원이 5년 새 50% 증가했다. 2018년 128명에서 2020년 182명을 기록하더니 지난해 189명으로 늘었다. 출연연 정년퇴직자 역시 한 해 200명이 넘는다. 자발적 퇴직자와 정년퇴직자를 합치면 4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한 해 출연연을 떠나고 있다.

 

한편 특허청은 기술유출 시도를 막기 위해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는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침해 현장에서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정리한 결과보고서를 증거로 활용하는 전문가 사실조사 △법정 외 장소에서 당사자 간 녹취를 진행하고 녹취록을 증거로 활용하는 당사자 간 증언 녹취 △법원이 소송 초기 당사자에게 증거의 멸실과 훼손 방지를 명령하는 자료보전 명령을 도입하는 것이다.

 

관련 특허법 개정안은 이미 2020년과 2021년에 발의돼 현재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조계나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큰 법안이다 보니 특허청이 2020년부터 20여 개 협회·단체를 대상으로 80여 차례에 걸쳐 의견을 수렴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양연희 기자 takah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