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가짜뉴스를 악의적으로 퍼트리는 유포자에게 강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최근 11억 달러(약 1조 4883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은 미국의 한 극우 음모론자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산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파산과 상관없이 배상금을 전액 갚으라고 판결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휴스턴 파산법원의 크리스토퍼 로페즈 판사는 극우 성향의 사이트 ‘인포워스(Infowars)’를 운영하고 있는 알렉스 존스가 신청한 파산 신청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로페즈 판사는 존스가 11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줄이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 판결로 “존스는 평생 동안 빚을 갚아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존스는 지난 2012년 코네티컷주(州) 샌디혹 초등학교에서 20명의 학생과 6명의 교육자가 사망한 총기 참사에 대해 “총기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날조한 사건”이라며 “피해자들이 실제로는 살아있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분개한 유족들은 지난 2018년 존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텍사스주와 코네티컷주에서 열린 재판에서 “존스는 각각 11억 달러와 3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우리 돈으로 약 1조 9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존스는 배상금을 줄이기 위해 회사 파산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에는 개인 파산신청까지 했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이날 법원은 존스가 인포워즈를 청산하고 비슷한 형태의 다른 사이트를 새로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유족들이 줄어든 배상금을 어쩔 수 없이 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유족들은 올해 초 존스의 파산 신청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금이 또 다른 재판이나 합의 없이 전액 지급되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피해자들은 파산법원에서 “존스가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파산법에서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행동을 통해 발생한 채무는 법원의 채무자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휴스턴 법원은 11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에 대해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존스의 변호인단은 “존스가 비판한 대상이 미국 정부이지 피해자 가족들은 아니었다”며 “존스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했을 뿐 고의적이고 악의적이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코네티컷주 법원이 명령한 3억 달러 상당의 손해배상금과 변호사 비용에 대해서는 “존스의 행동이 고의적이고 악의적이라고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렵다”며 제외했다.
이번 판결로 존스는 손해배상금 전액을 지급하게 됐지만 그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으로는 배상금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워 합의 관련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가짜뉴스를 유포했다가 소송을 당해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령받거나 합의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지난 2020년 미 대선에서 투·개표기 업체인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이 선거 조작에 개입됐다”는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도미니언은 2021년 1월 폭스뉴스를 상대로 16억 달러(약 2조 1656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 폭스뉴스는 도미니언에 7억 8750만 달러(약 1조 658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소송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소송을 당했다. 법원은 지난 9월 “머스크 CEO가 2018년 X(옛 트위터)에 잘못된 정보를 올려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혔다”며 “4153만 달러(약 562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머스크 CEO는 2018년 “테슬라 상장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글을 올린 후 3주 만에 상장 폐지 계획을 백지화했고, 테슬라 주가는 10% 이상 급락했다.
지난해 1월에는 미 팝스타 카디비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린 한 유튜버가 410만 달러(약 55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판결 받았다. 유튜버 타샤K는 “카디비가 마약과 매춘을 했다”는 영상을 20개 이상 올렸고, 카디비는 2019년 타샤K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심민섭 기자 darklight_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