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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식의 가짜뉴스 팩트체크]⑱한국 고고학계를 경악케 한 ‘거북선 총통’ 유물 조작 인양 사건(1992년)

해군 대령이 총통 모조품을 바다에 빠트린 뒤 인양, 17일만에 국보로 지정돼
4년 뒤 공모한 수산업자 입에서 총통 조작 사실 터져 나와
한국 고고학계와 해군의 역대급 흑역사로 기록돼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字銃筒)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 우리나라 국보에서 해제된 총통(銃筒)이다.

 

  이 총통은 1992년 8월 18일 해군사관학교를 중심으로 조직된 ‘충무공해저유물발굴단’이 경상남도 통영군 한산도 문어포 서북방 460m 수역 해저에서 발견했다.  이 총통은 인양된 지 17일 만인 9월 4일 국보(274번)로 지정됐으나 4여년 뒤에 가짜임이 드러나 1996년 8월 30일 국보에서 해제됐다.

 

  이 총통의 기구한 사연은 이렇다.  발굴 단장인 황동환(黃東換 해사 22기) 해군 대령이 유물 발굴단 자문위원 겸 골동품상이었던 신휴철(申休哲)의 집에서 모조품을 받아 잠수부를 시켜 바다에 빠뜨린 뒤 8일 만인 8월 26일 인양했는데 이 사실이 4년 뒤에 드러난 것이다.  현재 국보 274번은 결번으로 남아 있다.

 

 한국 고고학계와 해군의 역대급 흑역사로 남은 이 발굴 조작 사건은 ‘한국판 후지무라 신이치 구석기유물 조작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길이 89.2cm, 구경 5.9cm에 달하는 총통의 포신에는 '萬曆丙申六月日 造上 別黃字銃筒'(만력병신년, 1596년 6월 제조하여 올린 별황자총통) 과 '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거북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만력(萬磨)이란 중국 명나라 월력이며 1596년 병신년은 만력 24년이다. ‘龜艦’이라는 문구는 이제까지 기록으로만 전해질 뿐 실물로는 전하지 않는 거북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기에,역사학계와 고고학계는 단박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국보가 된 황자총통은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됐고, 해군은 이후 이를 바탕으로 실물복원은 물론, 포격 시험까지 실시했으며 포신에 새겨진 '일사적선 필수장'(一射敵船 必水葬,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은 육군의 '일발필중'(一發必中 one shot, one kill)과 함께 해군의 슬로건으로 떠올랐다.  1992년이 임진왜란 400주년이라 전국적으로도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면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38t급 소형 탐사정 한 척과 30명에 불과한 미니 발굴단으로서는 믿기 어려우리 만큼 큰 업적을 올린 것이기에, 발굴단장 황동환 대령에게는 보국훈장 삼일장이 수여됐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96년 4월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지익상(池益相) 검사는 문화재 보호구역 안에서 자생하는 피조개 채취 허가를 받아주는 대가로 어민들로부터 4400여 만원을 받아 각 기관에 뿌린 혐의로 구속된 수산업자 홍무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황동환 대령에게 900만 원을 건넸고 그 외의 관계기관에도 돈을 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 대령으로부터 가짜 별황자총통을 바다 속에 빠뜨린 다음에 이를 인양해서 국보로 지정되게 했다”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황 대령을 추궁해 총통이 조작된 사실을 확인하는 한편 해군의 명예를 고려해 해군이 나

머지 조사와 발표를 맡도록 했다.

 

 해군 검찰부는 1996년 6월 18일 국보 274호가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성분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국보로 지정된 점과 거북선을 가리키는 표현이 당대의 표기와 달랐는데도 문화재 위원들이 명문(名文)을 보아 진품이 확실하다고 잘못 판정한 점 등이 드러나 파장이 일었다.

 

황 대령은 검찰 조사에서 “수산업자로 일하던 홍무웅을 통해 골동품상이었던 신휴철이 소유하고 있던 모조 총통을 구입해서 바다에 바뜨리게 한 뒤 자신이 발굴한 것처럼 꾸몄으며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조성도 교수도 이 사건에 관여했다”고 진술했다.

 

귀함별황자총통에 쓰여진 명문은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된 것이 아닌 현대적인 글귀이다.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는 거북선을 한자로 ‘龜船’(귀선)이라고 적었지만 ‘龜艦’(귀함)이라고 적은 기록은

없다.

 

 왜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왜군의 배를 ‘적군의 배’를 뜻하는 ‘敵船’(적선)이 아니라 ‘도적의 배’를 뜻하는 ‘賊船’이라고 표기했다.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 ‘射’(사)라는 표기는 활로 화살을 쏠 때에 사용했으며 포 총통과 같은 화약 무기를 사용할 때에는 ‘放’(방)이라는 표기를 사용했다. 또 조선 시대에는 ‘水葬’(수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례가 없다.

 

<서옥식의 가짜뉴스의 세계에서 발췌, 저자는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대한언론인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