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연구소(세종연)가 임대 기간을 최장 90년으로 설정하면서 사업자 선정과정서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또 문정인 전 세종재단법인 이사장이 사임하기 직전 외교부의 승인 절차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것이 드러나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문 전 이사장은 지난 3월 14일 A사와 부동산 임대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경기 성남시의 연구소 부지 3만 8000㎡(약 1만1500평)를 장기 임대해 대형 복합건물을 짓는 내용이다.
그런데 계약 체결 시점은 법인 이사회에서 문 전 이사장에 대한 사임 안건이 의결된 날로 문 전 이사장이 사임하기 직전이다. 특히 문 전 이사장은 계약 닷새 전 A사와 “주무관청(외교부)의 사업승인 완료시 공식적으로 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세종연과 같은 외교부 등록 국가정책연구재단은 임대 사업 등 산상 중대 변동이 발생할 경우 주무관청인 외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문 전 이사장은 외교부의 승인 절차 없이 계약을 체결한 뒤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세종연은 또 최장 90년의 임차 기간을 보장하는 계약을 했는데 이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 소식통은 “세종연이 사실상 1만 1500평 부지에 대한 소유권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유사하다”며 “통상 20년, 길어도 30년을 넘지 않는 게 계약 관례인데, 이 같은 초장기 임대 계약을 맺게 된 배경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지난 25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초장기 계약을 서둘러 체결한 세종연구소는 관리 감독부처인 외교부에 "신임 이사장이 임명되기 전 사업을 인가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은 지난달 외교부를 찾아가 신임 이사장이 임명되기 전이라도 부지 개발 사업을 빨리 인가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문정인 이사장이 퇴임하기 전에 소위 '대못'을 박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계약에 앞서 성남시에 자연녹지였던 이 부지의 용도를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나 올려 달라고 신청했고, 성남시가 그대로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9월 세종연은 재정난 타개를 위해 만1500평 부지에 대형 복합건물을 짓겠다며 성남시에 교통영향평가를 신청했지만, 소상공인 이해 침해 등의 이유로 반려됐다. 그러나 두달 뒤 연구소 측이 당시 은수미 성남시장을 직접 만나 사업 필요성을 강조했고, 성남시가 4단계를 올리는 용도변경을 사실상 승인했다. 일각에선 부지용도를 4단계 높여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연이 임대 사업 대상자로 A사를 선정한 과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세종연은 ‘스토킹 호스(Stalking-horse)’ 방식을 거쳐 A를 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스토킹 호스는 우선협상대상자와 사전 계약을 맺은 뒤 추가적인 공개 입찰을 거쳐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사업대상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세종연은 수의 계약으로 인한 배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스토킹 호스를 선택했다는 입장이지만 공개 입찰을 통해 다른 업체가 A사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했을 가능성 자체를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
세종연은 매년 112억원의 임대 수익을 예상하지만 현재 재정 상태 등을 감안할 때 사업을 감당할 여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세종연은 임대 사업 과정에서 1만1500평 규모의 부지만 제공할 뿐 6000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는 전액 A사가 부담한다. 용도변경을 위한기부채납용 임대주택 건설 비용 400억원 역시 A사가 대신 지급한다. 결국 이 돈은 모두 세종연의 빚이 되고 세종연은 임대 기간인 50년 동안 매년 27억원을 A사에 지급해야 한다.
지난 17일 세종재단법인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용준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취임 직후 해당 부동산 임대 사업 계획의 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 역시 세종연으로부터 공식적인 사업 승인 요청이 접수될 경우 그간의 논의 과정을 점검하고 법률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중앙일보는 밝혔다. 이 경우 임대 사업을 대신할 새로운 자구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종연은 해산 수순에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