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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수경 칼럼]시스템을 건드리는 자가 범인이다

개혁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
'검수완박' '공직선거법' '법원조직법' 개정안의 속뜻은 무엇?

선인(善人)의 독재와 악인(惡人)의 민주주의. 둘 다 비극이지만, 그래도 굳이 골라야 한다면 뭐가 좋을까? 당연히 후자다. 악인도 얼마든지 선인으로 포장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절대적 기준에 부합하는 선인이 있다 한들 권력은 언제든 선인을 악인으로 오염시킨다. 반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행여 악인이 권좌에 앉게 돼도 그의 전횡을 저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누가 권좌에 앉아도 권력이 남용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시스템에 손대>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면 당연히 개혁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란 시스템 상의 오류를 끝없는 논쟁과 토론을 통해 보완해 온 기록이다. 문제는 ‘개혁’이라는 허울 좋은 기치를 내걸고 시스템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검수완박’을 고르겠다. 토론의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채 통과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법안의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는 중요치 않다. 그게 무엇이든 제대로 된 숙의를 거쳐 통과되느냐가 중요하다. 정당한 법안이면 통과될 것이고 부당한 법안이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저지해줄 것이다.

 

요즘 민주당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 의혹과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검수완박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의 중심에 선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코인 게이트’의 주역 김남국 민주당 의원 등 비리 혐의에 연루된 모든 민주당 의원은 하나같이 검찰의 독재를 비난하며 검찰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투사인 척 한다. 이쯤 되면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해서 행복해지는 건 과연 국민인지 정치인인지 잘 모르겠다.

 

입법권자, 즉 국회의원들은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규제를 만들 수도, 없앨 수도, 바꿀 수도 있다. 그런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입법권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함부로 사용한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민주당은 얼마 전 난데없이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정확히 6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곧 퇴임할 김 대법원장이 사실상 후임 대법원장 후보군 선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공직선거법, 선거 과정에서 거짓말해도 괜찮아>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치인이 선거 과정에서 ‘행위’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심지어 이 법안은 소급적용이 가능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스스로 국회의원의 거짓말에 면죄부를 주는 입법을 하다니,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찾아볼 수 없는 법안이다.

 

한때 87억 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김남국 의원은 2020년 이해충돌 방지법을 대표 발의하면서 국회의원 재산신고 의무사항에 가상자산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2021년에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법안을 공동발의 했다. 김 의원이 가상자산 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은 현재 인정하는 것만 10억 원 정도인데, 지금의 제도 하에서는 단 10원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 그는 2020년 당시 다주택자들의 부동산 투기를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은 규제가 전무한 가상자산에 투자해 떼돈을 벌었다.

이쯤 되면 민주당이 그토록 부르짖는 ‘개혁’의 실체가 수상하다.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지만 검수완박으로 정작 혜택을 보는 것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는 국회의원들이다. 대법원장 뽑는 방법을 공정하게 바꾸자고 하지만, 정작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대법원장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공직선거법을 바꿔서 정작 혜택을 보는 것은 이제부터 ‘행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도 되는 국회의원들이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로 혜택을 보는 것은 10억 원이나 수익을 보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국회의원이다.

 

 

<옳은 대의라도 시스템을 파괴하면 反민주>

민주당이 이토록 시스템을 건드리는 것은 민주주의가 곧 시스템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가 부조리한 안건이 상정돼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거치면서 대부분 저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스템 자체를 건드리고 훼손한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시스템을 건드린 자들이다. 아무리 옳은 대의라 하더라도 시스템을 파괴하면서 관철된 대의는 반(反)민주적이다.

 

악인의 민주주의와 선인의 독재 중 여전히 악인의 민주주의를 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악인이 전횡은 제어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이 ‘선’(善)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이 독재나 마찬가지의 입법 관행을 일삼고도 우리의 대의는 언제나 옳으니 과정 따윈 상관없다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시스템’이고, 사실 그게 전부다. 시스템을 건드리는 자가 민주주의 파괴의 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