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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신문읽기, 이생각 저생각]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타살

사망자들 모두 20~30대, 대책 촉구하는 기사 줄이어
임대사업자와 공인중개사가 공모한 사기에 걸려들어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으로 불리는 남모 씨 일당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급증한 가운데 극단적 선택을 한 세 번째 사망자가 나오자 18일자 신문들이 실태 고발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사와 사설을 잇달아 실었다.

 

피의자 남 씨는 인천과 경기도 등에 2700채를 소유하고 있으며 161가구의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세입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는 A1면 ‘난 의지할 부모도 없다, 유서…쓰레기봉투엔 정신과 약봉지’라는 제목으로 “전세 사기를 당한 20, 30대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한 건 2월 말과 이달 14일에 이어 세 번째여서 추가 희생을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17일 오전 1시 22분경 박모 씨(31·여)가 미추홀구의 아파트 자택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남자 친구에 의해 발견됐으며 병원으로 옮겨진 뒤 사망 판정을 받았는데, 현장에선 극단적 선택을 한 흔적과 함께 “전세 사기를 당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박 씨는 2019년 9월 전세보증금 7200만 원을 내고 59.62㎡(약 18평) 규모의 아파트에 입주했으나 집주인은 이른바 ‘바지 임대인’으로 실소유주는 건축왕 남 씨였고 해당 아파트는 2017년 준공 직후 채권최고액 1억5730만 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박 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여기에 집주인은 2021년 9월 전세보증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렸는데 이 아파트가 지난해 3월 경매에 넘어가 박 씨는 전세금을 모두 날리게 됐다. 해당 아파트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8000만 원 이상이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최우선변제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데다 박 씨가 살던 아파트는 매매가가 1억4000만∼1억5000만 원 수준이어서 경매가 끝나면 한 푼도 못 받고 거리로 내쫓길 상황이었다.

 

박 씨도 근저당권이 있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도 안 되는 해당 주택 계약을 주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범이었던 공인중개사가 “경매에 넘어갈 경우 피해를 변제해 주겠다”고 이행보증서까지 작성해 안심시키는 수법에 속아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는 “이 아파트에서 만난 한 피해자는 ‘근저당권에 대해 물었더니 피해 공제 증서를 써줘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경매에 넘어간 뒤에야 이런 증서가 아무 효력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올 2월 기준으로 남 씨 소유의 주택 중 690채가 이미 경매에 넘어갔는데, 나머지 주택들도 순차적으로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 희생자가 추가로 나올수 있다”며 “정부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놨지만 예방 대책 위주여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A3면 ‘보증금 8500만원 넘으면 최우선변제금 못받아… 정부대책 사각’이라는 기사에서 “정부가 잇달아 전세사기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사기 피해자들은 정부 대책에 사각지대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최우선 변제 제도가 대표적”이라며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소액 임차인은 일정 금액의 최우선 변제금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소액 임차인 기준(서울은 보증금 1억6500만 원, 인천은 8500만 원)을 100만 원이라도 넘길 경우 최우선 변제금을 못 받는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놓은 저리 대출도 피해를 당한 집의 전세대출 이자는 그대로 내면서 새로 이사할 집의 보증금을 빌려주는 것이어서 피해자의 주거비 부담을 낮춰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정부는 2월 대책에서 기존 전세대출을 저리로 대환대출해주는 상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은행 시스템 연계 문제로 빨라야 4월 말에야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경매 절차 일시 중단’도 현실적으로 도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공매의 경우 채권자가 국가인 만큼 공매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다. 다만 경매는 선순위 채권자가 은행이거나 개인인 경우가 많다. 정부가 강제로 경매 절차를 중지시키면 선순위 채권자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A1면 ‘전세사기, 일단 버텨보자 애써 웃던 30대도 떠났다’는 기사로 관련 기사를 전한 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박 씨는 건축업자 남 모씨가 설계한 조직적 전세 사기의 피해자가 돼 있었다”며 “더 절망적인 건 집이 경매에서 낙찰돼도 박 씨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없었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유정복 인천시장은 피해자들이 사는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경매 시 피해자 우선 매수권 부여, 대출한도 제한 폐지, 긴급 주거 지원에 따른 이주비 지원 등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며 “피해자들은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1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고 밝혔다.

 

사설 ‘정보 비대칭 해소해야 전세 사기 피해 줄인다’에서는 “공인중개사가 감정평가사와 공모해 집값을 부풀리는 이른바 ‘업(up) 감정’ 수법을 동원한 전세 사기가 횡행한 게 사고를 키운 게 사실”이라며 “신축 빌라처럼 세입자가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려운 부동산 시장의 정보 비대칭이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A1면 ‘집 비워줄 방법, 이것 뿐이었다…인천 전세사기 3번째 죽음’에서 “숨진 20~30대 청년들은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등 생활고를 겪어왔다.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A5면 ‘보증금 선반환 빠진 대책, 절망보다 얕고 죽음보다 늦었다’(사진)라는 기사에서는 “국토교통부는 2월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지원 대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들이 원했던 ‘피해 보증금 선 반환 후 구상권 청구’는 담겨 있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은 당장 살고 있는 집이 넘어가지 않도록 ‘경매 절차 일시 중단’을 요구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의 발언을 덧붙여 “미추홀구 피해자들의 경우 진행 중인 경매 절차 중단이 가장 시급하다”며 “근본적으로는 공공이 먼저 보증금을 임차인들에게 돌려주고, 추후 경매 등의 방식을 통해 회수하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A5면 ‘청년층 신혼부부 노린 인천 건축왕...공인 중개사 고용해 대놓고 사기 행각’ ‘나도 3일후면 나가야 하는데... 전세 사기 피해자들 전전긍긍’ 등의 기사로 관련 실태를 잇달아 전했다.

 

한겨레 신문도 1면 ‘인천 건축왕 전세사기, 청년 3명의 목숨 앗아갔다’ 기사에서 “올해 들어 전세보증금 때문에 목숨을 끊은 사건은 인천에서만 벌써 세번째다. 모두 50일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3면 ‘근저당 걸린 집 정부대책 구멍…경매 중지·우선 매수권을 호소’에서는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재발 방지책과 피해자 구제 방안을 쏟아냈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며 “피해자들은 근저당권이 설정된 전세사기 집에 대해선 ‘경매 중지’ 조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미추홀구의 한 전세사기 피해자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남씨와 한패나 다름없는 공인중개사들이 ‘근저당권이 있어도 안전한 매물’이라고 안심시킨 뒤 전세 계약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3면 ‘3107채 중 2020채 경매 수순…벼랑끝 피해자들 피가 마른다’에서는 전셋집이 경매에 부쳐지면서 ‘주거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는 피해자들의 실태를 전하면서 “피해자들 입장에선 ‘경매 낙찰’은 사형선고에 가깝다. 전셋집이 낙찰되더라도 1순위 채권자에 해당하는 시중 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의 채무를 변제하고 나면, 임차인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사설 ‘잇따른 전세사기 피해자 참변, 적극적 대책 나서야’에서는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임대사업자와 공인중개사들의 불법 행위를 감독하지 못했고, 금융당국과 수사기관도 은행들의 전세대출 리스크 관리와 대출 브로커 적발에 실패했다”며 “무엇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은 정부의 무능함이 만든 ‘사회적 타살’인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