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전 아무런 변호 안해...의견서 한장 안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65) 당시 대검 중수부장(현 변호사)이 회고록을 통해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인으로서 무능했으며 노 전 대통령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주장을 해 주목을 끌고 있다.
17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일종의 비망록 같기도 한 회고록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제목으로 조갑제닷컴 출판사를 통해 오는 20일 시중에 배포될 예정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당시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2009년) 5월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무런 변호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미국 주택 구입 사실이 밝혀져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등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고 하소연할 만큼 궁지에 몰렸다.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 마저 곁에 없었다. 이게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재임 중 권양숙 여사에게 약 2억550만 원 상당의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를 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이어 "권 여사가 2007년 6월 청와대에서 당시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전 회장에게서 100만 달러, 같은 해 9월 홍콩에 있는 다른 사람 계좌로 4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 박 전 회장의 진술 등 증거를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와 공모, 아들 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4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2008년 2월 재임 때 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았고, 노씨 등이 이를 사용한 것은 다툼이 없다. 이 돈은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약속한 환경재단 출연금 50억 원을 500만 달러로 쳐서 노 씨 등의 사업자금 명목으로 준 뇌물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또 총무비서관의 박 전 회장에게서 받은 3억원과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에게서 빌린 15억 원은 노 전 대통령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편 총무비서관이 대통령의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 원을 횡령한 것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는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기소, 유죄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 수사 기록을 읽어 본 적도 없는 문재인 변호사가 무슨 근거로 '수사 기록이 부실하다'고 단정하는지 어이가 없다"라고 반문했다.
이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장실에서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했다는 주장도 했다‘라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어서 순간 당황했으며 무어라 답변해야 좋을지 난감했다‘라고 술회했다. 그는 "사전에 보낸 질문지에 명품 시계 수수 부분이 들어 있지 않아, 검찰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라고 기억했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과 대질을 거부했지만 조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을 만나도록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박 전 회장이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합시다”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과정은 CCTV로 녹화돼 영구 보존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당시 중수부 1과장·노 전 대통령 수사 주임검사)에게 '검사님, 저나 저의 가족이 미국에 집을 사면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 가만히 있겠습니까'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자신에게 수사의 불똥이 튈까 봐 그를 멀리했던 민주당 정치인들은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자 돌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며 검찰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고, 그들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손가락질했던 노무현 정신을 입에 올리며 앞다투어 상주 코스프레 대열에 합류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온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됐다. 이제는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라고 회고록 집필 이유를 밝혔다.
이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4기로 1985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대검 중수부 검찰연구관, 법무부 검찰국 검찰4과장, 검찰2과장, 검찰1과장 등 요직을 거쳤다. 대검 중수부에서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 기업수사팀장을 맡았고, 2009년 1월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직후 검찰을 떠나 한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로펌 대표에게 “세상이 바뀌었으니 로펌을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로펌 대표가 이 변호사에게 “문재인 캠프 핵심 인사에게 들었는데 당신은 꼭 손을 보겠다고 합니다. 같이 죽자는 말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 변호사는 그해 8월 미국으로 떠났다가 2019년 여름 귀국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던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변호사에 대해 “그렇게 얘기할 사람이 그동안 왜 도망다녔느냐”라며 “‘검찰 공화국’이 도래하니 복귀한 건가. 그 사람 말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치검사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