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란 일을 하라고 시킨다는 의미다. ‘위증 교사’는 위증 즉 거짓으로 증언하라고 시킨다는 뜻이다. 25일 김동현 부장판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위증 교사는 있었지만 고의성이 없다”고 했다. ‘시키는 행위’에 고의가 없다는 얘긴데, 이것을 이해하려면 일단 상식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 고도의 철학적 논제로, 플라톤이 환생해야 그에게 설명을 들어볼 수 있겠다.
김동현 부장판사의 이 대표 무죄 판결은, 판결문을 철학적 텍스트로 끌어올렸다. 그의 판결문은 웬만한 철학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독해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을 하라고 시켰는데 고의가 없다니. 김동현 판사는 이 대표가 김진성 씨에게 위증을 하라고 시켰다고 인정해놓고는 그 행위에 고의가 없었다고 했다.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백번 양보해서, 김동현 부장판사가 그만의 철학적 깨달음으로 ‘고의가 없어도 일을 시킬 수 있지’라는 진리(?)를 간파했다고 치자. 김동현 부장판사는 “피고인 김진성은 이재명의 요청을 받고, 마치 들어 알고 있는 것처럼 위증을 하였는바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설시했다. 이 대목은 정말 아연실색케 한다. 이재명이 시켜서 위증한 김진성 씨는 유죄, 위증을 요청한 이재명은 무죄. 얼씨구, 이게 판결인가, 판소리인가.
판사 출신의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개탄했다. “우리 법제에 도입된 자유심증(自由心證)주의는 법관에게 일반상식에 부합하는 추론을 허용한다는 것일 뿐, 법관이 일반상식과는 어긋나게 자기 마음대로 추론하는 자의심증(恣意心證)은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연애는 했지만 로맨스는 아니다, 거짓말을 했지만 허위사실 공표는 아니다, 이런 식의 해괴망측한 판결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비뚤어진 욕망에 의해, 양의 탈을 쓴 악덕 정치가에 의해 언제든 오염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인류는 그보다 더 나은 제도를 발견하지도 창안하지도 못했기에 민주주의에 의지한다. 인류는 또한 민주주의의 최후 버팀목이 법치주의란 것도 발견해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법치마저 무너지면 곧바로 중우정으로 변질된다. 판사로서의 권한을 악용해 '교사'와 '고의'를 제멋대로 해석한 엉터리 무죄 판결. 법치를 우롱한 김동현 부장판사 같은 판사를 방치하는 사법부 전체가 죄인으로 전락할까 두렵다.
트루스가디언 편집장 송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