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짜뉴스가 ‘뉴스’란 형식에서 벗어나 자체적 서사 구조를 가진 일종의 ‘내러티브’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단편적 ‘가짜뉴스’에서 이야기 구조를 가진 ‘가짜 내러티브’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 공간에서 흥미 위주로 가짜뉴스가 퍼져나가는 것을 넘어, 누군가 고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통하는 주체가 있다는 것으로 가짜뉴스가 ‘설계’ 단계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일 바른언론시민행동이 주최한 <최근 새로운 가짜뉴스의 대두와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황근 선문대 교수는 이처럼 내러티브 전성 시대에 가짜뉴스까지 내러티브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특징은 특정 집단의 의견을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인양 착각하게 하고 그와 관련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또한 다양한 측면을 가진 어떤 이슈에 대해 그 한쪽 측면만 보여줌으로써 공격 대상으로 삼은 집단이나 개인의 판단을 배제한다. 논리적, 합리적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가짜 내러티브에 반하는 견해, 사실, 과학적 증거들은 일방적으로 무시된다.
가짜 내러티브는 순도 백퍼센트의 가짜뉴스가 아니라 일부 진실된 정보를 고의적으로 편향된 방법으로 제시한다. 진실된 정보라 해도 그걸 가치 이상으로 확대해 스토리라인을 만든다. 반대로 특정 이슈는 아예 재고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몰아가거나 반대 사실이나 견해는 불법인 것처럼 호도한다.
예를 들어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씨로부터 명품 파우치를 받은 사실은, 확산되고 반복 공유되면서 ‘뇌물 공작’은 사라지고 오직 ‘명품백’만 남았다. 황 교수는 이를 두고 “몇개의 특이하고 주목을 끄는 분절된 용어만 선택적으로 지각되면서 첨예화된다”고 설명했다.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가짜뉴스의 경우도 ‘청담동’이란 상징이 대중의 머릿 속에 각인된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생태탕을 먹었다’는 가짜뉴스 역시 ‘생태탕’이란 상징어가 선택적으로 지각된 결과다.
황 교수는 가장 성공한 가짜 내러티브로 ‘토착 왜구’를 꼽았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친일 반역자들’이란 의미의 이 용어는 20년 넘게 지속되면서 점점 정교해졌다. 게다가 일본과 연관된 것이라면 모든 것이 친일 매국인양 호도하게끔 만든 대표적 가짜 내러티브다.
황 교수는 또 최근 야권이 퍼뜨린 ‘계엄령’ 설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발언과 국방장관 교체 같은 일련의 흐름의 핵심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 작전이란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 허위 주장은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봄’이 그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를 본 대중은 야당 최고위원의 발언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영화의 서사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김민석 의원의 주장 이후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하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계엄령설에 기름을 부었었다. 양문석 의원은 “지난 4월부터 국군 장성 130명이 나무위키에서 본인 정보를 삭제하라고 조치했다”고 주장했다. 내러티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 특유의 가짜뉴스 생산구조는 “정당이 가짜뉴스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계엄령 같이 근거없는 주장을 야당 대표가 앞장서 내세웠고, 이를 좌파 내러티브 카르텔이 확산했다. 정치권이 제공한 가짜뉴스 소스를 MBC, JTBC 등 메이저언론을 비롯해 민중의소리, 스픽스 등 인터넷 매체가 받아 일반화하면서 계엄령은 단순한 주장을 넘어 정치의제화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토론에 나선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설적으로 거짓말이 개인에게 백만원이라도 손해를 입히면 사기죄로 처벌하는데, 가짜뉴스로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면 웬만해선 처벌되지 않는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제안했다.
박인환 자유언론국민연합 공동대표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가 내러티브상으로 혼재돼 있어 판별하기가 어렵다”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소비자 대중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