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우파는 건국도 했고, 산업화도 했지만 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게 바로 정치였다. 우파의 정치는 사실상 청와대의 국회 파견 업무였다고 봐야 한다. 반면 좌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정치만 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우파와 좌파의 이런 선택의 결과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의사 결정이며 그래서 리더십 창출 과정이다. 우파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파 정당이 언제부터인가 사실상 리더십 창출에 실패한 불임 정당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강의 노벨상을 보면서도 우파의 리더십 부재 현상을 엉뚱한 방면에서 확인하게 된다. 한강의 노벨상은 그 출발점이 사실상 1987년 체제에 있다고 봐야 한다. 좌파 연합(호남-주사파)이 정치적 승리자이자 87체제의 오너가 된 것이 출발점인 것이다.
정치적 승리란 것은 그 공동체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정당성의 근거가 된다. 왜냐? 정치가 의사 결정이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 흔히 말하는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서 작동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정상적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 결정은 무조건적인 정당성을 갖게 된다.
87체제에서 좌파가 승리자로 등극했기 때문에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가치와 담론, 논리도 좌파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런 정당성의 향배에 가장 예민하게 영향을 받는 분야가 정서와 정신적 가치를 다루는 영역 즉 문화 예술 분야이다.
한강의 노벨상은 그 결과인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우파는 땀 흘리며 나무하고 물 긷고 밥 지어다가 좌파에게 헌납했다고 봐야 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현실판 버전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저 이솝 우화는 '열심히 일만 하던 개미는 비참하게 짓밟히고, 사기칠 연구를 열심히 하는 베짱이에게 먹힌다'는 내용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말 비참한 것은 우파들이 스스로가 패배자라는 사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를 해야 하고, 우파 정당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파가 버티는 유일한 근거는 대한민국의 헌정 정체성이다. 건국과 이후 헌정 재편 과정에서 북한과 대립되는 정체성으로 세팅됐기 때문에 좌파들이 이 문제를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체성은 국내 상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관계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쉽게 건드리기 어렵다. 문재인이 집권 기간 동안 고민하다가 포기한 문제이기도 하다.
좌파들이 피해자 정서, 소수자 의식에 매달리는 것도 이것들의 전술적 고려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대한민국 헌정 정체성 아래에서는 자신들이 본질적으로 마이너일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좌파들이 구사하는 전략이 일종의 차명 전략이다. 실제 대한민국의 소유권은 지들이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그 등기는 우파 이름으로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질과 명분의 괴리 현상이 대한민국의 모든 허위와 양아치짓, 사기질의 근원이 되고 있다. 좌파 예술이 그런 것들이고 한강의 노벨상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근원이 명패는 우파, 실제 소유권은 좌파가 행사하는 이 나라의 구조이다. 그 가장 치명적인 후과는 이 나라가 아무 헌정적 결단도 못하고 황금 같은 시간과 기회만 날려보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전라남도 광주 출생으로 민청년(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등 운동권 활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에는 미래통합당에 입당해 문재인 저격수로 활동했다. 전라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광주는 80년대에 묶인, 민주화의 성지라는 미명 아래 비극을 기리는 제사가 마치 본업처럼 된 도시" “광주와 호남이 변해야 대한민국이 살아난다.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광주와 호남을 과거에 묶어두려는 민주당을 심판해 달라”며 운동권과 민주당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