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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TG 칼럼] 노벨문학상의 여진에 대한 걱정 한 개 더

요샌 인터넷 SNS도 주요 취재 공간이다. 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는 잘만 가공하면 여느 메이저 언론사 ‘단독’ 기사 못지 않은 기사거리들이 제법 있다.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발표된 지 나흘이 지난 오늘도 클릭질을 하다가, 한 페이스북 친구가 이런 걱정을 글로 옮겨놓을 걸 발견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에 대해 많이들 관심 가지실 듯하나, 약간의 주의를 요한다.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는 내가 너무 순진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거 너무 변태 아닌가 싶어 많이 불편하고, <희랍어 시간>은 진짜 희랍어로 써진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뭔 말인지 모르겠다. 단편집 <노랑무늬영원>은 그나마 읽을만하나, 너무 음울해서 힘들다.”

 

노벨상 수상이 국민적 축제가 되면서 인쇄소가 모처럼 밤샘 근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간 출판계의 불황을 생각하면 기분 좋은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득, 책을 산 시민들이 독서 후 얼마나 자신의 독서를 만족할지가 궁금해졌다. 

 

대다수는 단순히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고 책을 ‘소장’하기 위해 한강 작가의 책을 사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 속에서 삶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노벨상을 탄 문학’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고 책을 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고 그런 교훈을 얻었다면 노벨문학상이 한국 출판계 불황을 타개할 전기가 될 게 분명하다. 여기서 쓸데없는(?) 걱정은, 기대하고 책을 샀건만 기자의 페북 친구처럼 ‘뭔말인지 모르겠다’처럼 실망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이다. 

 

기자가 20대 때엔 프랑스 영화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프랑스 영화를 대화 주제로 얘기하는 동년배들을 보면 주눅이 들었다. 당시 대학가엔 비디오방이 성행이었는데, 나도 그들 사이에 끼고 싶어 혼자 프랑스 영화 비디오를 집어들었지만, 그때마다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왜 나는 예술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자존심이 상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지루하기만 할 뿐 도통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한국 영화 ‘초록물고기’(1997년 작)를 혼자 비디오방에서 봤을 때의 충격이란. 가슴이 얼어 붙는 듯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다 보고도 일어서질 못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존재하지만, 한국 영화와 음악에 이어 문학까지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분명 제2, 제3의 노벨문학상이 또 나올 것이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에게, 작가의 작품을 이 같은 마중물적 역할로 받아들이고 그걸로 만족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20대의 기자가 프랑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좌절감이나 실망감은 그저 ‘취향’의 문제일 뿐, 그 영화가 훌륭했다 아니다란 가치의 논쟁이 끼어들 건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고품격 프랑스 예술영화가 따분할 뿐이었던 그 20대 대학생에게도 비디오방의 추억이란 게 남았으니, 몇 천원 이용료는 그리 아깝지가 않은 게 됐다고 말하고 싶다.

 

트루스가디언 편집장 송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