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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청년 시론] ‘초등 의대관’ 미혹에 빠지는 한국 학부모

한국 사교육, 자녀를 옆집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열등감 문제
의대 열풍에 생긴 '초등 의대관', 안정적인 미래 갖길 원하는 부모에겐 매력적
자녀의 잠재력 위해 비교 의식의 굴레가 아닌 비전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23년간 유대인 학생들을 가르쳐 온 수지 오 교장이 지난 2015년 EBS ‘EBS 초대석’ 방송에서 남긴 말이 있다. “한국 학부모는 교육 전문가의 말보다 옆집 아줌마의 말을 더 신뢰한다.” 이 말에 마냥 웃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 사교육만 봐도 어떤가? 공부 잘하는 옆집 아이가 가는 학원을 내 자녀도 따라 보내는 게 한국 사교육의 구조로 자리 잡지 않았나. 물론 사교육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옆집 아이 따라 하는 것도 항상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자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또 이 상황에 맞는 교육이 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큰 문제가 된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 관계도 많이 흐트러진다. 자녀를 향한 사랑보다, 내 자녀를 옆집 아이와 비교함으로써 생기는 열등감이 우선되면 생기는 문제다.

 

비교 의식이 더하고 더해져 학원가에 ‘초등 의대관’ 바람이 불어온 지도 꽤 되었다. 의대 열풍에 힘입어 초등학생 때부터 선행학습에 힘쓰며 의대 진학 코스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케팅이다. 내 자녀가 다른 아이보다 어떻게든 빨리 진도 나가길 원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이것만큼 매력적인 게 없다.

 

 

하지만 이렇게나 빠른 선행학습을 하고도 좋은 실력을 갖추는 학생은 소수다. 아직 공부에 동기 부여가 전혀 안 된 상태라 학원만 대충 왔다 갔다 하는 학생도 많고, 차라리 그 시기에 친구들과 놀거나 책 한 권 더 읽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도움 되는 학생도 많다. 소위 1타 강사라고 하는 이들의 말만 들어봐도 어떤가? 선행학습은 6개월에서 1년 전에만 해도 전혀 늦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애초에 ‘초등 의대관’이 학원 이름에 들어가는 것부터도 문제가 있다. 공부 잘하면 다 의대 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가장 안정적인 직업인 건 사실이라 ‘초등 의대관’이라는 이름은 자녀가 안정적인 미래를 갖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잘 이용했다. 하지만 이는 그 아이와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미래를 봤을 때 그다지 좋은 마케팅은 아니다. 의사보다 불안정해 보이는 직업이라도 자녀에게 잘 맞는 일이 분명히 있고, 이로써 의사보다 훨씬 큰일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지켜줘야 한다.

 

늘 그랬지만 오늘날은 특히, 돈을 많이 쏟아부어야 공부 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1년에 100만 원이면 전 과목 1타 강사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모두 들을 수 있다는 건, 수험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건 ‘가정’의 회복이다. 가정에서 자녀를 비교 의식의 굴레에 두는 게 아니라,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비전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저 안정적인 삶만을 자녀에게 주입시키며 돈만 쏟아붓는다면, 자녀의 잠재력과 그 돈은 어디론가 사라질 뿐이다.

 

황선우 트루스가디언 객원기자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대변인

‘문화는 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