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와 김건희 여사에게 연줄이 있다고 속여 1억여원을 가로챈 전직 언론인에게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른바 ‘공천 브로커’들이 ‘윗선’을 들먹이며 돈을 뜯어내고 그 수법에 속는 정치지망생들이 상당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판결이란 평가가 나온다.
24일 문화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허경무)는 공직선거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된 전직 언론인 A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치인 B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B씨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 출신으로, 뒤늦게 자수해 형을 감면받았다.
이날 재판부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후보자 추천이 대통령실·영부인·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나 돈과 결부됐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켜 엄히 처벌한다”고 판시했다. B씨에 대해서는 “뒤늦게 뉘우친 점을 감안했다”는 취지로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청와대 선임 행정관 출신인 B씨는 지난 1∼2월 경북 구미갑 지역구 공천 청탁을 위해 A씨에게 현금 1억 원 등 총 1억2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자신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움직여 공천을 받아내주겠다고 B씨를 속였다. A씨는 “V(대통령을 의미함)나 영부인에게 직접 연결이 안 되면 힘든 지역이다” “현직 의원을 컷오프시키면 단수공천 가능성이 있다” 등으로 B를 꼬드겨 돈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B씨는 A씨가 장담한 공천이 이뤄지지 않자 사기 혐의로 고소한 뒤 자수했다.
또 A씨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등 유력 정치인이나, 영부인·대통령실 비서관 등을 언급하는 대화를 B씨에게 전달하면서 영향력을 과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 윤석열 대선 캠프와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 시절 받은 특별보좌관 위촉장이나, 공관위 관계자와 주고받은 문자 캡처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재판부는 “(언급된 정치인 등이) 실제로 단수 공천을 약속하거나 장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물론 이철규 의원이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걸 법원이 인정한 셈이 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전형적인 정치 브로커들의 세계를 보여준 판결이라고 지적한다. 최병묵 정치평론가는 “야당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이재명 이름을 팔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김대남 녹취록’에 이철규 의원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