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몇 살일까?” 하고 물으면 “반만년”이라 답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반만년의 역사를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2024) 76년 됐고, 이 한국이 우리나라다. 1919년 건국론자들이 주장하듯 올해를 건국 105년으로 계산하더라도 반만년은 틀린 계산이다. 반만년의 역사, 즉 대한민국 건국 전까지도 모두 포괄한 역사를 말하려면 한국사가 아닌 ‘한반도 역사’라고 하는 것이 맞다.
왜 우리나라 나이를 반만년이라 하는 걸까? 우리 것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선도, 고려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뭉뚱그려, 우리나라가 아닌 나라에 대해서도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는 ‘헬조선’이라는 단어에서도 나타난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처음에 만들어진 건 2010년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서다.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헬조선”이라는 말이 향했던 곳은 이씨 조선(1392-1910)이었다. 천민과 여성들을 핍박하고 중국의 속국인 채 계속하여 퇴보하는 조선이 헬(Hell, 지옥)과 같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 단어가 퍼지면서 의미의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민국 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이나 기업가 등 소위 고위직 인사들의 부정부패 세태를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부정부패 저지르는 고위직 인사들에게서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이 보인다는 의미였다.
헬조선은 이후 한 단계 더 변화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의미는 대한민국의 특정 개인을 넘어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실업 문제나 양극화 등의 책임을 자본주의 체제에 둔다. 이러한 구조론적 세계관을 통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조선의 신분제처럼 특정 사람들만 잘 먹고 잘 살게 한다는 의미다. 이로써 헬조선은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좌파 용어가 되었다.
최근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가 영화로 개봉되고 헬조선 담론이 다시 올라왔다. 역시나 대한민국의 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니 탈출하는 게 가장 좋고 그게 아니라면 이 지옥 속에서 최대한 버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헬조선에 대한 개념이 잘못 결합되니 할 수 있는 말이다. 대한민국을 탈출하겠다는 사람 잡을 수 없고 헬조선이라 비판하겠다는 것 막을 수 없지만, 잘 모르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방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어 집필한다.
무엇이 진짜 ‘헬조선’인가?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조선의 신분제와 정말 다를 바 없을까? 자본주의와 신분제의 공통점이라 하면 ‘격차’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신분제와 달리, 모든 인간에게 자유를 준다. 이 자유를 가지고 개발과 경쟁을 해서 경제 발전을 이룬다. 그리고 이 발전은 빈(貧)층을 함께 끌어올린다. 신분제는 체제가 노예를 만들어내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특정 개인이 스스로 노예가 되지 않는 한 모두가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 자본주의와 신분제는 명백히 구분된다. 그래서 사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헬조선’ 용어의 의미는 애초에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성립과 불성립 자체를 부정하는 상대주의적 역사관이 지금의 헬조선을 완성시켰다. 자본주의와 신분제의 ‘격차’라는 공통점 하나와 ‘상대주의’가 대한민국과 조선 사이의 경계선을 무너뜨렸다.
격차를 부각하기 위해 상대적 박탈감 프레임을 강화하고 인간을 계급화한다. 소유하고 있는 자본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양 말한다. 사랑도, 비전도, 행복도 모두 계급이라는 울타리 너머에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망상은 좌파들에게 헬조선으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좌파 정책을 펼치고, 빈층을 더 빈곤하게 만든다. 실업 문제와 양극화는 더 심해져 마치 조선의 신분제를 연상케 한다.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라 외치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진짜 헬조선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진짜 “헬조선”이라 부를 거라면, 대한민국이 조선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두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헬조선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대한민국이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정통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
전근대적인 신분제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 대한민국 국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계급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온전한 개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남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규정짓고 계급화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며 성숙해나가야 한다. 자신이 경쟁해서 이겨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계급이라는 울타리 너머를 바라볼 게 아니다. 사랑도, 비전도, 행복도 사실은 매우 가까이 있다.
황선우 트루스가디언 객원기자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대변인
‘문화는 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