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내에는 ‘통일역’이란 이름의 지하철역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역 간판에서 ‘통일’이란 이름이 지워졌다. 이 역의 이름은 아직도 그냥 ‘역’이라고 한다.
올해 1월 17일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화국의 민족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이후 북한 정권은 ‘삼천리 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동족을 의미하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북한 정권이 어느날 갑자기 ‘남조선’이란 용어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도 같은 것이다. 남한은 동족이 아니라 그냥 외국이란 걸 북한 내부에 선전하기 위함이다.
그럼 북한이 한반도 2국가를 주장하고 통일을 포기했으니 도발 위험도 없어졌는가. 정반대다. 동족이 아니므로 까짓 핵폭탄 좀 쏜다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북한이 최근 휴전선 인근에 지뢰를 대량 매설했다는 건 우리 군이 인정한 사실이다. 지뢰밭을 뚫고 인민군이 내려올리는 없겠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핵폭탄은 지뢰밭 위로 날라온다. 대신 한국군이 북으로 밀고 올라가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북한은 재래식 전력으로는 한국군에 절대 열세이니 기댈 건 핵무기뿐. 핵무기를 쓰려면 당장 내부에서부터 명분을 쌓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 대상이 동족이라고 하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게 한반도 2국가론이다.
북한이 연평도를 도발했던 것처럼 인구밀도가 적은 어느 섬을 골라 핵폭탄을 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남한의 정권이 북한에 굴종적인 세력이라면 당장 유화책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할 게 뻔하다. 김정은이 노리는 건 이것밖에 없다. 북한이 뿌리는 오물 풍선에 화생방 가스라도 실려서 내려와 터져 버리면 어쩔 텐가. 마찬가지로 돈 주고 협상하려 할 것이다. 이게 북한 정권의 유일한 생명줄이 돼 버렸다.
압록강 인근에서 발생한 홍수 사태는 한국 국민들과 전 세계인에게 북한은 이미 나라가 아니란 걸 천명한 셈이 됐다. 사람을 구하러 나간 헬기마저 추락해, 한국 언론에 따르면 3천여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북한 정권 붕괴는 시간 문제다.
임종석 씨가 통일을 포기하자고 했지만 통일은 우리 의지대로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장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중국이나 러시아군이 한반도 이북을 점령하려 할 텐데 그걸 눈감으려 하는 한국 국민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유사 시 북한 지역을 한국군이 접수한다는 데 이견이 있는 자유 진영 국가도 거의 없을 것이다. 통일은 한반도 주민의 운명과 같은 것이다. 통일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혹시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을 접수하도록 내버려두고 김정은 일가가 그들의 비호 아래 호의호식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한국의 종북세력은 중러의 꼭두각시 괴뢰국에서 한 자리 차지할 계산도 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임종석으로 대표되던 종북세력이 대놓고 통일을 포기함에 따라 북한 정권과 함께 떠내려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트루스가디언 편집장 송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