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가 빠져나간 응급실의 인력 부족 문제를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언론의 왜곡 보도로 고통을 더하고 있다는 뼈있는 지적이 응급의료계에서 나왔다. 정상적인 응급실 진료의 모습마저 ‘응급실 뺑뺑이’로 왜곡 포장해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은 물론 국민들과 환자들의 피해가 커진다는 호소였다.
이경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9일 중앙일보에 이같은 내용은 담은 글을 기고했다. 이 교수는 이번 추석 동안 응급의료 현장의 모습에 대해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며 “다만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의(인턴) 없이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 한 두명만이 응급실을 24시간 지키고 있다는 게 예년과 다른 풍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언론에서 이번 추석 때 응급실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호들갑을 떨었던 게 ‘팩트’와 전혀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추석 연휴 5일 동안 필자 역시 3일을 응급실 당직 진료를 하면서, (또한) 학회 공보이사로서 틈틈이 언론에 보도되는 응급의료 관련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며 “너무 과도하게 소위 ‘응급실 뺑뺑이’라며 왜곡된 보도를 볼 때는 참으로 안타깝고 허탈함마저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의 호소는, 현재 응급 의료 현장에 인력 부족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나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에 현장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얘기였다. 이 교수는 “정상적인 수용 능력 확인과 이송을 어떻게 ‘응급실 뺑뺑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추석 연휴에 안과 응급 수술을 15시간 만에 받았다고 ‘응급실 뺑뺑이’라는데, 전공의 선생들이 정상 진료하고 있었던 설, 추석 연휴, 아니 주말 공휴일에도 안과 응급 수술을 15시간 만에 받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심지어 어느 종편 뉴스 리포트에서는 임신부 50분 응급실 대기까지 보도되었는데, KTAS 1,2등급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니라면 활력징후 정상인 임신부가 50분 응급실 진료를 기다렸다는 것이 무슨 뉴스거리가 되는지 정말 의문스럽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손가락 절단 환자 사례는 해당 지역 국립의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페이스북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올렸을 뿐 아니라, 소방에서도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란 것을 자세히 설명했으니 재론의 여지가 없고, 복부 자해 자상 환자의 경우도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응급실 뺑뺑이’로 보도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응급실 진료 받고 타원으로 전원되거나, 119구급대가 수용 능력 확인을 위해 사전에 응급의료기관에 확인 전화를 한 사례까지 모두 ‘응급실 뺑뺑이’로 보도하고 있었다”며 언론을 향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교수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어떤 응급 환자든지 첫 방문 또는 이송되는 응급실에서 모든 응급처치와 입원, 수술, 중환자실 입원과 같은 최종 치료를 받아야 ‘응급실 뺑뺑이’라는 보도가 사라질까”라고 개탄하며 “지구상에서 그럴 수 있는 병원이나, 지역,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왜곡 보도 때문에 의료진뿐 아니라 전 국민이 피해를 본다고 쏘아 붙였다. 그는 “국민들과 환자들, 보호자들은 점점 불안해하고, 심지어 119신고가 필요없는 경증, 비응급 환자까지 119구급대의 도움을 받아야만 응급실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119구급대의 구급활동에 필요없는 부담마저 더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현장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제발 그만 좀 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한두 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밥도 못 먹고 물 한모금 못 마시며 중증응급환자를 진료하느라 정말 고생하고 있는데, 그런데 대다수 언론 보도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응급실 뺑뺑이’라니. 해도 너무 하고들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히려 과도한 추석 응급의료 위기설로 인해, 이후 마치 ‘응급의료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국민과 정부, 언론에서 생기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스럽다”며 “응급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도 사람이고, 7개월이 넘어가는 오랜 격무로 인하여 허리 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기도 하고, 점점 힘들어지는 응급의료 현장의 어려움은 연말로 갈수록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정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에 대한 실질적 보상을 높이고, 민·형사상 법적 처벌과 손해 배상 최고액을 제한하는 것과 같은 법률, 제도적 개선이 속도감있게 정부와 국회에서 이루어져 빈사 상태에 놓인 응급의료 분야에 생기가 돌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