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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민의 엔터 비평] 무한도전 신화, 가브리엘로 무너지나

가브리엘, 예능 벗어나 타인의 삶 고찰하는 주제의식…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 압도
시청자·방송사, 김태호에 예능 기대… 김태호, 예능 아닌 색다른 실험
대중이 김태호에 바라는 건 철학 수업이 아냐

 

한때 김태호 PD는 MBC 예능의 상징이었다. 폐지 직전의 ‘무한도전’을 맡아 MBC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에 올려놓더니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키워냈다. 예능프로그램으론 드물게 무려 13년간 방송되다 2018년 종영됐지만, 지금까지도 OTT 사이트에서 순위권에 오르는 스테디셀러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MBC를 넘어 한국 방송의 한 기점이었다. 순간적인 웃음에 기대던 예능프로그램에서 해를 넘기는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제작진과 출연자가 10년 이상 함께하며 나이 들었다. 시청률과 광고 수주에 따라 정기 개편까지도 못 버티는 프로그램이 비일비재한 방송가에서 ‘무한도전’은 ‘전국 노래자랑’에 비견되는 역사와 탄탄한 팬덤을 자랑했다. 그런 무한도전이 이렇다 할 고별식도 없이 갑자기 종영했고, 이후 김 PD는 MBC에서 새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했지만 결국 MBC를 떠났다.

 

‘무한도전’의 인기에 힘입어 MBC 사장은 누군지 모르는 시청자도 김 PD는 알고 있었고,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몰라도 김 PD는 기억했다. 스타 PD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도 MBC의 김태호와 KBS의 나영석은 소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스타 PD였다. MBC 장기파업이나 출연자들의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무한도전의 성공은 PD의 능력으로 여겨졌으며, 단순한 스타 PD의 명성을 넘어 천재 PD라는 극찬까지 이어졌다. 그의 이름 영문 표기를 ‘TaeHo’가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에 빗대어 ‘TEO’라고 팬들이 표기할 만큼 예능 PD로서 뛰어난 감각을 인정받았다.

 

무한도전의 인기가 최절정일 때 만났던 MBC 인사팀 직원이 ‘김 PD가 퇴사할까 봐 회사에서 전전긍긍한다’라는 농담이 단순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MBC에서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무한도전의 장기간 흥행으로 김 PD는 케이블방송을 비롯해 OTT 등 각종 매체와 플랫폼의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KBS 나영석 PD가 CJ계열의 케이블방송으로 이직했을 때, 다음은 김태호라는 말이 방송가에 돌았지만, 김 PD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MBC를 지키며 월급쟁이로서의 의리를 다했다.

 

□ 무한도전, 그 이후

김 PD가 2021년 결국 MBC에서 퇴사하고 OTT 플랫폼에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넷플릭스에 ‘털보와 먹보’를 론칭하며 새로운 김태호의 시대를 알렸지만, 의외로 반응은 미지근했다. 무한도전 출연자였던 노홍철과 월드스타를 꿈꿨던 가수 비를 내세웠음에도 시청자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김태호라는 이름값이 있기에 곧 대박 콘텐츠로 돌아올 거란 믿음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김 PD가 독립프로덕션으로 종편채널 JTBC에 런칭한 ‘My name is 가브리엘’이 0.9%라는 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김태호라는 스타 PD의 커리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최저시청률이긴 하지만 이후 최고시청률도 1.5%로 첫 시청률이었던 1.5%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무한도전과 가브리엘

파리올림픽 기간 자연스러운 휴식기를 가졌음에도 시청자들은 ‘My name is 가브리엘’(이하 가브리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최고시청률은 여전히 1.5%이고 간신히 1%대를 유지할 뿐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박보검, 지창욱 등 예능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한류스타를 캐스팅하고도 시청률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김태호라는 이름값에 초라한 시청률도 의외지만 기본적인 팬덤이 있는 스타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던 배우로도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놀랍다.

 

박보검, 지창욱 카드로도 승부수를 띄울 수 없자 ‘가브리엘’ 측은 다시 K-POP스타로 화제몰이에 나섰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가 이탈리아 시골 민박집에 사는 마리아의 삶을 보여줄 예정이다. 연기가 본업인 배우들이 보여준 타인의 삶도 호응을 얻지 못했는데, 화려한 조명과 의상, 화장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걸그룹 멤버가 농가 민박집에 사는 모습이 과연 설득력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제니는 이미 ‘아파트404’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걸그룹 인기와 예능 성적표는 무관함을 드러냈다. 올해 초 tvN에서 방송했던 ‘아파트404’는 제니의 첫 예능출연작임을 전면에 앞세워 이른바 ‘제니 효과’를 얻고자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제니라는 스타성에만 기댔다가 예능의 재미를 놓칠까 봐 최고 예능 MC로 평가받는 유재석도 포진시켰고, 차태현이라는 안전장치도 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제니 역시 이런 전례가 있기에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스타성만으로 프로그램이 흥행할 수 없음이 이미 입증된 제니를 투입하는 것이 과연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파트404’의 실패에도 화제성은 확실한 제니를 섭외한 ‘가브리엘’의 제작진이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스타로 흥행이 될 것 같으면 이미 박보검, 지창욱으로 시청률이 반등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김태호 예능에 기대했던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시점임에도 계속해서 캐스팅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다급함이 저조한 시청률을 다시 한번 안타깝게 한다. 더구나 무한도전과 달리 가브리엘은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인생을 대신 사는 설정이기에 이색적인 외국 풍경과 문화가 눈요깃거리로 더해졌음에도 시청률은 제자리 걸음 중이다.

 

가브리엘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스타가 없어서는 아니다. 제작팀은 이미 가브리엘에서 스타 카드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내용의 변화 없이 더 유명한 스타를 통해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이다. 시청자는 왜 10년 전 무한도전은 찾아보면서 현재 방송되고 있는 따끈따끈한 가브리엘에는 무관심한 것일까?

 

□ 재조명되는 ‘무한도전’과 조명 꺼진 ‘가브리엘’

시청자들은 과거의 무한도전을 찾아보는 것을 뛰어넘어, 무한도전에서 방송됐던 내용이 현재를 예언했다며 새로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미래를 예언했다’는 밈으로 회자되고 있다. ‘무한계시록’이라고 불리는 강도 높은 팬덤은 지금도 강화되고 있는데, 왜 김태호의 새로운 콘텐츠는 환영받지 못할까. 단순히 지상파 방송사의 뒷배경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다.

 

□ 대중이 원하는 ‘김태호 PD’와 김태호가 원하는 ‘김태호 PD’

김 PD는 예능이 주는 웃음을 뛰어넘는 PD였다. 초창기엔 웃음을 주는 데 주력했으나, 소위 웃기는 프로그램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던졌다. 예능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항일독립운동가, 입양아, 결식아동 등 역사, 사회문제를 프로그램에 끌어들여 웃음 뒤에 진한 페이소스를 남겼다. 주말 저녁에 웃고 싶어 TV를 켠 시청자들에게, 실컷 웃다 마지막에 코끝이 찡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안겨줬다.

 

김 PD는 그렇게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능력 있는 PD였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심각하게 본 게 아닌데, 개그에 웃다 보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시청자에게 선사했다. 킬링타임 코미디가 남기는 허탈감마저 잊게 하는 대단한 재주였다.

 

가브리엘의 방송시간은 금요일 밤 10:30이다. 방송사에서 김태호 PD를 신뢰했기에 황금시간대를 배정했을 것이고, 시청자들도 한 주가 끝나고 주말이 시작되는 밤을 즐겁게 보내고 싶을 시간대이다. 그래서 동시간대 경쟁 방송사 편성도 예능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시청자도 방송사도 예능을 기대하는데, 김 PD는 예능이 아닌 색다른 실험을 가브리엘을 통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무한도전에서 의사와 야구선수의 삶을 살았던 개그맨 박명수와 정준하는, 익숙하지 않은 삶에 처한 모습에서 웃음을 줬었다. 물론 해당 직업의 고충 등 직업의 이면이 보여 생각하는 시사점도 던졌지만 큰 맥락은 개그로 예능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예능을 벗어나 타인의 삶을 고찰하려는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그램 전반을 압도한다.

 

□ 이상은 ‘무한도전’, 현실은 ‘타인의 삶’

제작진은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를 프로그램으로 확장했다고 했지만, 통일 이전 독일이 배경인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올려질 정도로 진지하다. 타인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며 고생했던 코미디가 원안이라고 해 놓고는, 도청하는 감시대상의 삶에 동화되는 ‘타인의 삶’처럼 보여주려고 한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와 인문학을 각오하고 예능을 시청하는 시청자는 없다. 재미없는 스타가 재미없게 타인의 삶을 연구하니 예능을 기대한 시청자들은 리모컨을 들지도 않고 클릭과 터치도 안 하게 된다. 모티브가 된 무한도전에서 의사의 삶을 경험했던 개그맨 박명수를 ‘가브리엘’에 투입했던 회차마저 큰 차이 없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음은 동일한 출연자임에도 내용과 방향성이 다름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한 인간의 삶에 녹아있는 희로애락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진지한 희로애락보다 90%의 락과 9%의 희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노와 애는 1% 정도 밖에 감내할 수 없는 시청자들에게 무한도전 아이템으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광고하고 인생의 깊이를 설파하니 시청자들은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 ‘무한도전’ 신화의 재현을 기대하며

이런 구조적인 차이에도 제작진은 제니라는 섭외하기 힘든 K-POP스타를 출연시키며 다시 반등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제니가 주는 즐거움과 무한도전이 줬던 즐거움은 성격이 다르다. 잘생긴 남배우가 연기하는 드라마에는 스토리가 있다. 극의 스토리가 주는 재미에 연기하는 남배우의 외모가 더해져서 흥미를 배가시키는 것이지, 연기인 듯 연기 아닌 모호한 설정으로 타인의 생활을 대신하는 것에서 잘 짜여진 시나리오의 극적 재미가 구현되진 않는다. 화려한 의상/화장과 퍼포먼스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여가수를 보는 재미는 음악과 시각적 만족에서 나온다. 춤과 노래에 더해지는 예쁜 외모에 열광했던 팬들이, 단순히 타인의 생활을 며칠간 대신하는 화장기 없는 여가수에게도 열광할지 미지수이다.

 

가브리엘 시청자는 KBS 장수프로그램 ‘인간극장’이나 ‘체험 삶의 현장’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인간극장’이나 ‘체험 삶의 현장’이 주는 재미와 ‘가브리엘’이 줄 수 있는 재미는 달라야 한다.

제작진은 이제 ‘가브리엘’이 무한도전을 잇는 예능프로그램인지, 재밌는 교양프로그램인지 시청자에게 정의 내려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블랙핑크 제니의 출연이 ‘아파트404’의 실패를 막지 못했다는 점과 대중이 김 PD에 바라는 것이 철학 수업은 아님을 상기하며, 지금까지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회귀해주길 바란다. 무한도전의 오랜 팬으로서 ‘My name is 가브리엘’도 무한도전처럼 오래 기억되고 회자되길 기대한다.

 

김민 전문기자 theMedia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