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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청년 시론] 탈주, 공조, 강철비… 북한 소재 영화의 변천사

재작년(2022) 추석 당시 세 영화 ‘공조2’, ‘육사오’, ‘헌트’가 경쟁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탈주’까지, 모두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다. 흥행작을 찾기 힘든 최근 영화계에서 이들은 모두 꽤 많은 관객을 확보했다. 마침 이 시기에 북한 소재 영화가 재밌는 게 많이 나와 우연히 그런 걸까?

 

영화가 흥행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기에 그런 측면도 없진 않겠다. 하지만 북한을 소재로 했다는 것 자체가 재밌는 영화를 제작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영화감독 입장에서나 관객 입장에서나 ‘북한’이란 상당히 미스터리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북한은, 안 좋은 곳인 줄은 알지만 가본 사람이 극소수여서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니 영화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의 영화를 제작하기 좋고, 그러면 관객도 더 흥미를 느낀다. 북한 소재 영화가 많이 제작될 수밖에 없고 또 이 중에서 흥행작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도, 대한민국에 영화라는 게 존재하고서부터도 북한 소재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북한이란 공간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과거에는 그것뿐만 아니라 북한 소재 영화가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에 맞게 개봉될 때 덩달아 흥행도 거머쥐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부에서 영화를 홍보하지 않더라도 국가적인 흐름과 영화의 흐름이 알맞다면 서로 이익을 보는 건 당연하다. 국가적인 흐름을 따라 영화가 더 주목받고, 그럼 관객이 더 늘어 대중에 더 큰 영향을 주고, 결국 정부의 지지도에도 영향을 주니 돌고 도는 이익이다. 그걸 노린 영화감독도 많이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1980년대까지는 대한민국 정부의 반공 색채와 함께 영화에서도 북한 정권을 매우 악하게 묘사했다. 북한 정권을 돼지로 묘사하던 ‘간첩 잡는 똘이 장군’(1979)이 대표적이다. 당시 영화에서는 북한 군인의 인간적인 면조차도 묘사되지 못했고, 묘사하길 시도하더라도 정부에 의해 검열되어 영화가 수정되어야 했다.

 

남북 교류가 점차 늘어나고 김영삼 정부가 들면서는 1996년 영화 사전 검열이 위헌 판결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였던 1999년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설립되어 기존의 검열보다는 한계를 많이 풀어주었다. 북한에 대한 묘사가 점차 변화하는데, 그 첫 영화가 ‘쉬리’(1999)였다. 북한 군인을 비롯한 북한 정권을 악하게만 묘사하던 한국 영화가 북한 군인의 인간적인 면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힘입어 ‘웰컴 투 동막골’(2005)까지도 개봉하기에 이른다. 6·25전쟁에서 북한의 남침을 엉성하게 묘사하고 뜬금없이 미국을 악하게 묘사하던 이 영화는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며 대박이 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면서는 북한 주민의 탈북 여정을 담은 ‘크로싱’(2008), 제2차 연평해전의 승리를 담은 ‘연평해전’(2015) 등이 개봉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고서는 ‘강철비’(시즌1: 2017, 시즌2: 2020), ‘공작’(2018) 등 북한 미화 의혹이 넘치는 영화가 다시 한번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대북 정책 방향이 정부마다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영화에서의 북한 묘사도 계속 바뀌어왔다. 이러다 보면 누구나 질리기 마련이다. 북한 주민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북한 미화에 속는 우매함도 점점 줄어들고 양쪽 모두에 지친다. 그에 따른 결과로 영화감독이나 관객이나 북한을 그저 하나의 미스터리한 소재로만 보고 재미만 추구할 뿐이었다. 2022년에 개봉된 영화 ‘공조2’, ‘육사오’, ‘헌트’ 모두 북한을 특정한 세계관 속에서 그리지 않고 그저 미스터리한 소재로 사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북한을 미화하는 건 아니어서 그나마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북한 인권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갖도록 이끌 위험이 있어 또한 우려되었다.

 

 

그런 와중에 올해, 영화 ‘탈주’가 북한 주민의 탈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오랜만에 등장한, 북한을 미화하지도 않고 북한 인권 문제에 무관심하지도 않은 영화였다. 256만 명의 관객도 확보했다. 윤석열 정부의 ‘북한이탈주민의 날’(7월 14일) 제정과 함께 그 흐름을 잘 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어쩌면, 북한 인권 실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북한 소재 영화 변천사가 보여주듯 대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리 흔들렸다 저리 흔들렸다 어느 순간 양쪽 모두 질려한다.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근 ‘탈주’ 흥행에 더하여 여러 좋은 콘텐츠를 많이 생산해내는 것도 해야 하고, 또한 정부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목소리 내는 것 역시 멈추지 말아야 한다.

 

황선우 트루스가디언 객원기자

전국청년연합 '바로서다' 대변인

‘문화는 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