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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간도 조선인들, ‘탈(脫)일본 국적’ 운동 벌였다”

중국 군인에게 조선인 살해됐는데도 일본 정부는 무성의… "말로만 일시동인"
당시 만주 조선인들, 재산권 행사 위해 일본 국적 버리고 중국 국적 따기도
이승만, 만주사변 후 '만주국 조선인 국적선택의 자유 보장하라'며 독립운동

 

‘일제 시대 조선인들의 국적이 어느 나라였나’라는 주제가 야권의 대여 친일공세 소재가 되면서, 대표적으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당시 우리 국적은 일본”이라고 주저없이 발언한 게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이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눈길을 끈다.

 

글의 제목은 ‘일정기 조선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로, 인터넷 신문 펜앤드마이크에 4일 게재됐다. 이영훈 교장은 일제 시대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하며 당시 국적을 둘러싼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1923년 2월 12일 만주 간도 용정에서 어느 조선인이 중국인 병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러자 용정의 조선인이 시민대회를 개최하여 중국 정부에 항의하고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시민대회는 일본 국적에서 벗어나자는 탈적(脫籍) 운동을 결의하였다. 일본이 조선인을 일본 국적에 매어 놓고 말로만 일시동인(一視同仁)이라 하나 실제론 차별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하면서 조선인을 보호해 주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같은 용정시민대회의 탈적 운동의 결의는 뒤이은 3월 1일 간도주민대회에서도 재차 확인되었으며, 국내의 동아일보는 그에 대해 1면 톱 기사로 크게 보도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이 일본 국적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의 호적법에 준하여 조선인이 국적을 이탈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기사에는 두 가지 사실이 들어있는데, 하나는 1923년께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가 엄연히 일본 국적인 조선인들에게 국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영훈 교장은 이 일화에 대해 “일본에서는 1899년 국적의 취득과 상실에 관한 조건을 규정한 국적법이 제정되지만, 그것이 조선에 의용(依用)되지는 않았다”며 “만주의 조선인은 일본 국적의 보유자로서 중국법에 따라 토지와 재산을 취득하거나 경제활동을 함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것이 일본 국적으로부터 이탈하자는 운동의 한편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즉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재산상 권리를 원활하게 행사하기 위해 일본 국적을 버리고 중국 국적을 따길 원했다는 것이다. 

 

이 교장은 “만주 조선인의 탈적 운동은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국적으로의 귀화 운동이었다”며 “실제로 중국 국적법에 준하여 중국 국적을 취득하는 조선인이 있었는데, 1920년대 말 만주에 있는 약 200만 명의 조선인 가운데 10% 정도에 달하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교장의 글에 따르면, 이승만은 만주 조선인의 국적 문제를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제기했다. 일본은 1931년 만주 대륙을 침략하고 만주국이란 괴뢰 국가를 세웠다. 이승만이 제네바에서 편찬한 『만주의 한국인들』이란 소책자에는, 임진왜란·을미사변·경신참변 등 역사적으로 일본이 조선인에 가한 만행을 소개했다. 그런 다음, 만주 문제의 해결은 만주의 조선인이 자유롭게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함에 그 열쇠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본 기자가 부연하면, 만주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이 국적을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게 되면 만주국이 무너진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일본인에 대해서조차 국적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었다. 이 교장은 “예를 들어 미국에 이민한 일본인이 병역을 필하지 않았을 경우 그는 일본 국적을 이탈할 수 없었다”며 “이 때문에 일본인 이민자의 이중국적 문제는 일본과 미국 사이에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빚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승만은 만주의 조선인들이 일본 국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비판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했다”고 썼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