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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좌승희 칼럼] 뉴턴과 마르크스와 한국의 미래

인류 문명의 발전사는 선각자의 성공문화유전자가 복제·전파되는 과정
뉴턴 “내 성공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더 멀리 볼 수 있었기 때문”
마르크스 “선각자들은 평범한 이웃을 착취하기 때문에 청산 대상" 역사 몰이해
오늘날 한국, 민주화와 함께 잘못 들어온 경제·사회적 평등주의로 선각자들 폄훼
선각자들의 문화유전자를 선양하는 사회와 경제만이 성공한다

이제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다. 그런데 많은 국민은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불평이 적지 않다. 한국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류 문명의 발전사는 앞선 선각자(先覺者)의 성공문화유전자(meme)가 복제(複製)·전파되는 과정이다. 개인의 발전은 물론 사회, 국가, 문명의 번영은 모두 앞선 선각자의 성공비법(노하우)을 무임 승차하여 배우고 복제함으로써 새로운 번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문명의 발전은 그래서 물이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듯이 앞선 선발 문명을 따라 이를 창의적으로 복제한 후발 문명이 선발 문명을 뛰어넘어 그다음을 이어가는 과정이었다. 세상은 그래서 문명의 주도 세력은 달라져도-적어도 아직까지는- 꾸준한 발전을 이어온 것이다.

 

원시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로,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끝없는 공산·사회주의 이념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면서 산업자본주의에서 지식·정보에 기반한 첨단 자본주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모두 다 평등하지는 않지만 끝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뤄내어 인류의 보편적인 삶은 이제 유사 이래 그 유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마치 대장간에서 제조한 마차를 굴리던 농경사회 경제에서 기차와 자동차로 달리는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거쳐, 이제 비행기와 우주선으로 우주를 정복하는 첨단 지식기반 자본주의 시대를 열고 있는 셈이다. 

 

그럼 이런 변화를 이끄는 사람과 조직은 누구인가? 새로운 문명의 창출은 바로 탁월한 성공을 일구어내는 개인은 물론 기업과 기업인들이 주도한다. 우리 주위의 평범하지 않은 소수의 자조(自助)하여 흥(興)하는 이웃들이 바로 기적의 주역들이다. 이들을 우리는 선각자라 부른다. 이들은 앞선 선각자들의 성공노하우를 복제하여 새로운 문명의 창출에 앞장선다. 아이삭 뉴턴은 자기의 성공은 거인들(giants)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더 멀리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선각자들을 따라 배워 더 많은 선각자들이 나올 수 있어야 개인들의 성공은 물론, 사회나 국가의 번영, 나아가 문명의 창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흥하는 이웃이 많아져 선각자 수양산 그늘이 강동팔십리에 뻗쳐야 나도 흥하고 사회도 나라도 문명도 모두 흥하게 된다는 것이 동양의 오래된 상식이다. 그러나 경제학은 이제 겨우 이 이치를 소위 내생적 성장론(Endogenous growth theory)이라는 이름으로 이론화하였으나 딱 여기서 멈춘 체 아직도 설익은 이론에 그치고 있다.

 

그럼, 왜 어떤 나라는 새로운 문명을 주도하는데 어떤 나라는 이에 실패하는가? 다른 말로 왜 모든 나라는 다 같이 선각자들이 넘쳐 모두 같이 발전하지 못하는가?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그런데, 세상은 결코 그냥 불공평한 게 아니다. 

 

문명의 복제 전파과정은 선발 문명에 대한 무임승차 과정이다. 이웃들이 쉽게 흥하는 이웃의 어깨에 올라타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선각자의 성공문화 유전자는 남의 무단복제를 피하기가 어렵다. 뉴턴의 말은 선각자들은 무임승차를 당한다는 말인 셈이다. 남의 지식에 대한 무임승차는 세상의 보편적 현상이다. 무임승차는 결국 버스회사를 망하게 하듯이 성공지식의 무임승차는 선각자들의 자조 노력과 성공 유인을 차단하게 되고, 선각자들은 소수로 전락하여 번영은 멈추게 된다. 이제 왜 미국이 중국의 미국 문명에 대한 무임승차를 차단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흥하는 이웃인 선각자들은 평범한 이웃을 착취하기 때문에 청산 대상이라고 했는데 이를 따라 선각자들을 없앤 공산·사회주의는 북한을 빼고 모두 몰락했다. 북한도 같은 길을 가고 있음은 자명하다. 오히려 사실은 우리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뉴턴처럼 선각자들을 무임 승차하여 “착취(搾取)”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아무 사회나 국가가 번영을 이루고 문명을 창출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르크스는 세상의 근본 이치를 거꾸로 본 셈이다. 

 

이제 미궁 속에 감춰졌던 국가나 문명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들어난 셈이다. 무임승차가 성공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실패의 원인인 셈이니 약 주고 병 주는 꼴이다. 이제 무임승차 때문에 소수화되어 가는, 그리고 오늘날 거의 보편화된 마르크스의 거꾸로 된 착취이념 때문에 더욱 처지가 어려워진, 선각자들의 문화유전자를 선양하여 이를 살려내는 나라는 성공하지만 이에 반하는 나라는 실패를 피하기 어렵다. 

 

한국의 지금까지의 성공의 기적은 흥하는 개인과 기업(가)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이룬 만큼 공정하게 우대하고 선양함으로써 모두가 너도나도 자조하는 선각자가 되는 길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노력하게 동기를 부여한 결과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정치 민주화와 함께 잘못 들어온 경제·사회적 평등주의로 오히려 경제·사회적 선각자들을 폄훼하는 것이 더불어 잘사는 길이라 하여 번영과 새로운 문명 창출에 역행하는 길을 가고 있다. 선진국 문턱에서 이미 선각자 수양산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생활이 더욱 빡빡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이치이다. 

 

국가나 문명의 성공의 길은 무임승차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성공문화유전자를 전파하여 번영에 기여하는 선각자들을 우대하고 선양함으로써 국민이 너도나도 선각자의 길을 따라나서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데 있다. 남에게 어깨를 내주어 모든 국민이 올라타 더 멀리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무임승차 할 수 있는 거인, 선각자 수양산이 많아져야 대한민국의 제2의 도약이 가능해 질 것이다. 한국의 정치권이 이 이치를 깨닫기를 기대함이 허망한 꿈이 아니길 기대해 본다. 

 

좌승희 박사

한국제도경제학회이사장·석학회원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