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6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부결 이후 35년 만이다. 대법원장 장기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됐다.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재석 295명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국회의 대법원장 임명동의 요건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다. 이날 가결에는 찬성 148표가 필요했으나, 이보다 30표가 더 적은 118표가 나왔다.
그동안 법원이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이 후보자는 논란이 된 비상장주식을 처분하겠다고 밝히며 가결을 호소했으나 거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정의당이 이에 동조하면서 대법원장 임명 동의 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지 못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 앞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참석 의원 전원 의견으로 당론 채택으로 부결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부결 직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사법 공백 야기시킨 민주당은 사죄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규탄대회를 가졌다.
김기현 대표는 이자리에서 "불법을 비호하고 범죄자를 은폐하기 위한 민주당의 조직적 사법 방해가 급기야 사법 마비, 헌정 불능 사태로 폭주했다"며 "이재명 대표의 개인적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한 의회 테러 수준의 폭거"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눈꼽만큼이라도 피해자 인권, 국민들의 사법 정의 실현, 범죄자 처벌, 정의에 관심 있다면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태를 보일 순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법을 마지막 보루로 믿고 법에 의지한 국민의 절박함을 외면했다“면서 ”민주당은 민생의 다급함보다 윤석열 정부 국정을 발목 잡아 정쟁을 지속하기 위한 정치 논리를 택했다"고 성토했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였던 정점식 의원은 "6년 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시절 어땠나. 오로지 후보자의 온갖 잘못을 감싸기 급급했다"며 "그렇지만 이 후보자에 대해선 사소한 실수까지도 침소봉대해 끝내 동의안을 부결시켰다"고 지적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민주당의 정략적 셈법이 사실상 사법부를 파행으로 몰아넣었고 삼권분립마저 훼손했다”고 했다. 그는 또 민주당의 부결 당론 채택과 관련, "임명동의안을 포함한 인사안만큼은 헌법 기관인 의원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담아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도록 한 국회법 취지까지 철저히 무시한 셈"이라고 질타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균용 후보는 문재인 정부 시절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다"며 "바뀐 것은 지명권자가 문재인 대통령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 바뀐 것뿐인데 민주당의 불순한 의도 때문에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가 장기 공백이라는 초유의 비상 상황을 맞게 됐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피해자는 국민이고 국민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투쟁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대법원장 임명 절차는 지명부터 인사청문회, 국회 임명동의까지 다시 진행해야 하며 이로 인한 사법부 수장의 장기 공석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또한 상고심 지연은 물론 사법부 구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아 현정사 상 유례없는 혼란이 야기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균용 후보 인사 청문 기간에 이재명 체포동의안을 제출돼 가결되자 민주당이 이에 앙갚음으로 대법원장 임명안을 부결시켰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부결 후 “윤석열 정부는 헌정 사상 두번째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자초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 국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보냈어야 했다”면서 “부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사법 공백 우려에 대해 “권한대행이 재판하는 것보다 잘못된 인사, 부적절한 인사가 대법원장이 되어서 사법부를 이끄는 게 사법부에는 더 큰 악재”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