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부(강동혁 부장판사)는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자신의 면직 처분에 불복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했던 면직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23일 기각했다. 윤 대통령이 재가한 한 전 위원장 면직 처분이 일단 본안 소송때까지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회적 신뢰뿐만 아니라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저해될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한 전 위원장 공소사실과 관련, 재판부는 “방송의 중립성·공정성을 수호할 중대한 책무를 맡은 방통위원장으로서 그 직무를 방임하고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감독의무를 방기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위원장도 방통위원 중 1인에 해당하므로 면직 사유가 있는 경우 면직이 가능하다”며 “국회에 탄핵소추 권한이 부여돼 있지만 이는 행정부 수반에 의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대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방통위원장을 면직하는 사유가 반드시 헌법이나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해 탄핵소추에 이를 정도로만 한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한 전 위원장은 2020년 3월11일 TV조선 반대 활동을 해온 시민단체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선임하고, 그다음 달 TV조선 평가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로 지난달 2일 불구속 기소됐다.
정부는 방통위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했다고 보고 한 전 위원장의 면직 절차를 밟았고,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면직안을 재가했다. 한 전 위원장의 임기는 내달 말까지였다.
이에 한 전 위원장은 지난 1일 면직 처분 취소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
대통령실은 이날 법원의 결정에 대해 “한 전 방통위원장은 방송의 중립성·공정성을 수호할 중대한 책무를 방기하였고, 소속 직원들이 TV조선 점수를 조작하는 것을 사실상 승인하였기 때문에 법률상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법원의 결정은 이를 명확히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또 “방통위가 조속히 언론 자유와 보도의 중립성·공정성을 수호할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법원이 엄정한 판단을 내려 한 전 위원장의 면직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며 "이는 방송 농단 시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자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한 전 위원장을 향해 "마치 자신이 정의의 사도인 양, 방송 독립을 위한 투사인 양 방통위원장직을 붙잡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며 "법원은 한 전 위원장이 직무를 계속할 경우 방통위에 대한 신뢰가 저해될 것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달았다"고 비판했다.
강 수석대변인은 "실제 한 전 위원장 죄는 매우 중하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한 방송사를 재승인이라는 절대적 권한을 남용해 찍어내기식으로 압박했다"며 "불편부당을 기반으로 공정성을 가져야 할 언론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이를 통해 권력에 굴종시키려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모든 국민에게서 방송과 언론을 빼앗아 가려는 '방송 농단'을 자행했고, 게다가 그 방법 또한 치졸하게 압력을 행사한 재승인 점수 조작 시도"라며 "공직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권력에 빌붙으려 한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 전 위원장은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며 변명만 늘어놓았다"며 "이런 행태를 보면 끝까지 사법부 판단을 부정하며 증거 인멸까지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면서 "한 전 위원장은 비록 늦었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언론자유특별위원회는 이날 성명문을 통해 "방통위를 정상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으나 윤석열 정권이 노골적으로 벌여온 언론탄압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윤석열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 행정절차법마저 무시해 가며 정권의 뜻대로 공영방송 TV 수신료 분리납부를 졸속 추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