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최근 5가지 놀라운 쇼를 보여줬다.
첫째, 세계적 반도체 메이커 TSMC,삼성, 인텔이 일본에 공장을 짓겠다고 몰려들고,
둘째, G7회의장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깜짝 등장해 일본이 세계의 지정학적 중심지임을 알리고,
셋째, 인플레가 3.4%를 기록(4월)하며 목표치 2%를 13개월 연속 웃돌고,
넷째, GDP성장율이 1분기 0.4%(연율 1.6%)를 기록해 한국을 능가하며,
다섯째, 이 같은 희소식이 겹쳐 TOPIX(도쿄증시)가 33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며 일본의 해가뜬다(Sun rise)는 찬가가 국제금융가에 퍼지는 현실이다.
불과 1년 전 일본의 GDP가 정확히 30년 전 수준으로 돌아오자 노구치 유키오 교수등 경제학자들은 1인당 GNI가 한국 대만에 역전당하게 생겼다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던 때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동안 아베의 3개의 화살 등 백약이 무효였는데 이번엔 다를까. 정말로 일본경제가 30년 만에 부활하는 걸까.
FT는 "일본경제가 우쭐하며 되살아나는가"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싱가포르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을 근거로 이 기사는 "기시다 총리가 일본을 서방의 안정적이고 건실한 공급망으로 바꿔 놓았다"고 칭찬했다. 칩 메이커들이 일본으로 몰려든 사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이 5대 일본종합상사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는 점도 굿뉴스였다.
미국의 금리 인상 행렬이 끝나 거대한 투자자본이 다시 해외로 나가는 상황에서 종전 같으면 중국이 으뜸 투자처였다. 그런데 미중 패권싸움이 심한 마당에 중국에의 투자는 꺼림칙하다.
그런데 일본종합상사는 중국의 가장 큰 무역거래처다. 중국경제 성장의 효과를 간접적으로 일본종합상사가 향유하게 되므로 여기에 투자하면 사실상 대중국 간접투자가 되는 것이다. 워런 버핏이 깃발을 들자 국제증시 투자자금이 우르르 일본으로 몰려들어 도쿄증시 TOFIX를 3만1000포인트 이상으로 33년 만에 밀어 올린 것이다..
일본기업들의 실적도 한국에 비해 좋아지긴 했다. 3월 말 회계연도인 일본기업 영업이익율은 4.2%로 높아졌고, 올 1분기만 떼놓고 볼 때 GDP성장율은 0.4%로 연율로 따지면 1.6%에 해당한다.
이창용 한은총재는 엊그제 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 GDP 성장목표치를 1.4%로 낮췄다. 한국이 일본보다 성장율이 낮아진 게 얼마 만인지 40년 기자 생활을 한 나의 경험으로도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정도로 일본이 30년 만에 '부활'이란 단어를 써도 좋을까? 나는 성급하단 생각이다. 아베가 3개의 화살을 들고 나올 때 얼마나 요란했던가. ‘일본이 돌아왔다!’느니 별별 미사여구를 썼지만 나중에 뜯어보면 바뀐 게 없었다.
그런데 요즘 일본을 들락거리는 전문가들을 귀동냥해보면 일본경제가 과거에 안 하던 일을 몇 가지 한다고 한다.
첫째가 당국이 기업에 임금인상을 독촉하고 실제 20~30%까지 올린 기업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는 상당한 변화다.
또 일본증권거래소가 PBR이 1에 미달하면서도 회사에 영업이익을 쌓아놓고 있는 기업들은 투자를 안 하려면 차라리 배당금을 크게 늘려 죽어가는 돈을 소비에 돌리도록 독려한다고 한다. 상당한 포인트다.
일본증시에서 PBR이 1 이하인 기업이 상장사가 절반이 넘는다니 얼마나 생기를 잃고 있었는지 알만하다. 한국의 상장사들 가운데도 PBR이 1 이하인 기업이 꽤 많다는 점에서 일본의 몸부림을 눈여겨보시라.
또 일본의 주주행동주의 펀드 숫자가 2015년도 14개에서 올해 70개가 넘은 점도 활동적인 요소로 꼽힌다. 이들의 등살 때문에 자사주 매입이 2022년도 회계연도에 한화로 92조 원에 달했는데 이는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러나 행동주의 펀드들은 일본회사들의 '완전한 변화'를 독촉한다. 국제공급망을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국이나 유럽기업들이 일본기업을 인수(M&A)하는등 다른 차원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아, 어쨌든 일본에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도쿄증시가 33년 만의 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긴하다. 이글의 첫머리에 나오는 5가지 쇼(show)도 과거에 볼 수 없는 현상들이다.
일본의 GDP성장율이 한국을 추월하는 것도 우리로선 유쾌한 일은 아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저출산이 걱정된다며 200억 달러를 쏟아붓겠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로운 변화를 초래하려 몸부림을 치는 기시다의 면모는 한국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을 밀어붙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는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면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증시 기록 등의 변화가 '반짝 현상'일지 펀더멘털한 것일지에 대해서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국제사회가 한두 번 속아봤나.
니케이지수 사상 최고치는 1989년 12월29일 기록한 3만8915.87인데 이에 도달하려면 아직 33%가 더 올라야 한다. 이 봉우리를 뛰어넘어야 일본경제가 정말로 부활했다고 국제사회는 인정할 것이다.
한 국가의 진정한 실력은 환율로 평가받기도 한다. 일본의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작년 일시 150엔을 넘기도 했는데 최근에도 140엔대를 맴돌고 있다. 한국의 원화 달러 환율이 1200원대로 환원하려는 모습에 비해 엔화는 약세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일본은행 총재가 구로다에서 우에다 가즈오로 바뀌었는데도 양적완화를 풀지 못하고 선진국 가운데 금리인상을 못하는 유일한 국가다. TOFIX가 33년간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액티브 머니가 아니라 전체인덱스를 매입한 패시브 머니(passive money)일 뿐이라는 증시 중개인들의 날카로운 분석에 해답이 숨어있다.
나는 그보다 더 펀더멘털한 현실을 지적하고 싶다.
일본은 IT 4차 산업혁명을 놓친 국가이다. 요즘 오픈AI의 챗GPT가 대세인데도 일본에서 뭘 개발했다는 얘기가 없다. 코로나19가 3년간 전 지구를 강타하고 지나갔을 때 일본에서 백신 개발 성공 기사가 뜬 적이 없다.
이런 근본적인 상황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일본에서 지구상에 없는 무슨 새로운 변화, 혁신을 주도했다는 말이 나와야 진짜로 믿을 수가 있고 일본증시는 그때 가야 3만9000을 돌파할 것이다.
2023년 상반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본변화 현상은 '반짝'에 점수를 더 주는 게 현재로선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