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은 5일 “보조금 비리에 대한 단죄와 환수 조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전날 대통령실이 발표한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에 대한 반응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같이 지시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정부는 ‘노조와의 전쟁’에 이어 민간단체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강한 법적 대응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보조금이 워낙 방대해 국민이 직접 감시하지 않으면 잘못 사용될 소지가 있다"며 포상금 제도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정부는 이에따라 포상금 지급 요건을 완화하고, 한도액을 높이는 제도 개선안을 이른 시일 내에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국고보조금을 제멋대로 사용한 민간 단체들이 정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정부가 지난 1월부터 29개 부처별로 최근 3년간 민간 단체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사업(총 9조9000억원 중 6조8000억원 대상)을 감사한 결과, 보조금을 부정 사용·집행한 사례가 1865건 적발됐다고 대통령실이 4일 밝혔다.

감사 결과 이들 단체는 횡령,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사용, 서류조작, 내부거래 등 다양한 형태의 부정행위를 통해 국고보조금을 빼먹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부정 사용 금액만 314억원이었다. 정부는 내년도 보조금 예산에서 5000억원 이상을 절감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통일 운동을 한다는 A 단체는 ‘묻혀있는 민족 영웅을 발굴한다’는 명목으로 국고보조금 6260만원을 지원받았다. 감사 결과 이 단체는 현 정권을 비판하면서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강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강의 원고 작성자도 아닌 사람에게 지급 한도의 3배 정도가 넘는 원고료를 지급한 정황도 적발됐다. 정부는 A 단체에 대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B 협회연맹은 2022년 국내외 네트워크 강화 사업을 하겠다며 해외 출장 3건에 대해 국고보조금 1344만원을 지원받았으나 실제로 2건은 연맹 사무총장 개인 해외여행이었고, 1건은 허위 출장으로 드러났다. B 연맹은 2020~2022년 제작하지도 않은 각종 자료, 기념품 제작비로 국고보조금 1937만원을 지원받고, 이 돈을 사무총장 개인계좌에 입금했다. 2020년에는 집행 근거도 없이 200만원을 사무총장 계좌로 입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방의 C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은 2022년 청년 창업 지원사업을 하겠다며 보조금 1000만원을 지급받고, 전액을 인출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이사장은 현재 연락 두절 상태라고 한다.
D 시민단체는 일자리 사업 보조금으로 311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알고 보니 이 단체는 강의실, PC, 상근 직원도 없는 페이퍼컴퍼니였다. 이 단체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 시설, 기자재를 단체 소유로 허위로 기재해 보조금을 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E 아동센터 원장은 대금 이체증명서를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위조해 운영비를 착복하는가 하면 행사나 회의를 연 사진을 일부만 잘라내 여러 건처럼 위조하거나 사진 속 현수막 날짜를 조작해 여러 건으로 조작한 사례도 적발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같은 장소에서 참석자 배치나 복장을 바꿔 다시 촬영하는 식으로 조작해 국고보조금을 타낸 사례도 여러 건 적발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보조금 신청 과정에서 허위사실 등으로 부정 수령한 경우는 보조금 전액을 환수하고, 집행 과정에서 부정·비리가 드러난 경우는 해당 금액을 환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이번에 적발된 1865건 중 보조금 유용·횡령, 리베이트 수수, 허위 증빙서 제출 등 비위 혐의가 중한 86건은 수사기관에 형사고발 또는 수사의뢰하고 목적과 달리 사용하거나 내부 거래가 의심되는 300여건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추가 감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이번 감사는 최근 3년간 지급된 국고보조금 6조8000억원을 대상으로 실시됐고, 비위가 적발된 사업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총액은 1조1000억원 규모라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감사 인력 등 한계로 이 기간 지급된 국고보조금 전체가 아니라 규모가 큰 사업 위주로 감사했고 사업비가 3000만원 이하인 사업은 제외됐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저질러지는 부정행위의 수법 등이 교묘하고 질이 안 좋은 만큼 그 이하 국고보조금 부정 수수·사용사례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앞으로 국고보조금 1차 수령단체뿐 아니라, 이 단체로부터 위탁·재위탁을 받아 실제 보조금을 집행한 단체들도 국고보조금 관리시스템(‘e 나라도움’)에 전부 등록하도록 하고 회계서류, 정산보고서 등 각종 증빙 서류를 등재하도록 할 방침이다.
대통령실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시스템도 종이 영수증 제출에 따른 수기 장부 관리에서 나아가 전자증빙을 기본으로 하는 관리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고보조금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을 현행 3억원 이상 사업에서 1억원 이상으로, 회계법인 감사 대상은 현행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