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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지원하되 간섭않는다'는 문화정책 프레임, 586 운동권 '문화 카르텔' 뒷받침해

좌파 진영 '간섭않는다'만 내세워 문화를 정파적으로 이용.
지원 당국의 책임 행정 실종되면서 회계 부정, 횡령 등 빈발
수준이하 다큐 '다이빙벨' 논란 빚은 2014년 부산영화제가 대표 사례

 

국내 문화예술계엔 가짜뉴스가 많다. 인기 연예인의 이혼설과 스타급 배우들의 결혼설, 최근 부쩍 늘어난 사망설이 그것들이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이른바 ‘팔길이 정책(arm's length policy)’ 이다.

 

이 가짜는 1998년 김대중 정부부터 윤석열정부 지금까지 25년넘게 우리 문화예술 정책 한 가운데서 전가보도처럼 무턱대고 실행해 오고 있다. 너무 그럴 듯 해 지금까지 국민들과 문화예술인, 중도 우파들이 속아 왔다. 목소리 큰 좌파 문화예술인들의 프레임에, 혹은 일방적인 주장에 아무런 검증없이 얼떨결에 따르고 있는 ‘진짜로 둔갑한’ 가짜뉴스다.

 

‘돈줄테니 니들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처럼 언뜻 폼나게 들리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엉텅리 정책인데도 집단체면에 걸려 국민 대다수는 진짜로 알고 있다.

 

실제로 이 가짜뉴스는 지난 부산영화제 논란을 포함해 국내 문화예술 사건에서 진짜보다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해 중도 우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간섭하지 않는다’ 에 지나치게 방점을 둬 정책을 왜곡 호도했다.

 

핵심은 책임행정을 간과했다는 것. 즉 지원금은 공공적인 돈, 국민의 혈세 일 것이고 그래서 응당 감사를 받아야 하는 데도 예술의 독립성, 자율성 운운 하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란 ‘팔길이 정책’ 은 말 그대로, 돈을 주는 정부와 그 돈을 받아 일을 진행하는 전문기관 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자는 정책이다. 1945년 영국에서 처음 고안된 개념이다. 당시 영국은 예술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예술평의회(Arts Council)를 설립하면서 예술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이 원칙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정책을 벤치마킹해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ARKO, Arts Council Korea)을 설립했다. 지금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다. 

 

하지만 영국 예술평의회 Art Council는 우리의 문체부 격인 영국의 DCMS(Dept. Culture, Media and Sports)로부터 관리와 예산을 받는다는 면에서 우리나라와도 다르지 않으나 사실 그 진행되는 정도를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즉, 담당하는 DCMS 정부의 책임자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아도, 예산안을 검사하고 심의하여, 기관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그 이후에 검토하는 일을 진행한다. 다시 말해 책임행정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이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팔길이 정책은 책임행정은 거의 무시하거나 쏙 빠진 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다’ 만 강조, 정파적으로 악용한 해 왔다. 정치선동적인 구호가 된 것이다. 실제로 영화진흥위원화 (이하 영진위) 단편독립영화 지원이나 부산영화제 국제 영화제 지원 등에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와 진영 싸움에 이용했다는 것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문화행정 전문가들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팔길이 정책을 책임 행정이라는 측면에서 엉텅리 정책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김정수 한양대 행정학 교수는 문화행정의 ‘ ‘팔길이 원칙’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금과옥조인가 격언인가? ‘ 라는 글을 통해 “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팔길이 원칙을 사실상 거의 무비판적으로 중시되고 있지만 책임행정이라는 공적 가치와 상충된다” 고 주장한다.

 

그는 팔길이 원칙의 논리적 타당성과 현실 적합성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문화정책의 보편적인 절대 진리인양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것은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정책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팔길이 원칙의 실현가능성도 의문시된다고 비판 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 팔길이 원칙은 결코 문화정책의 금과옥조가 될 수 없다. 얼핏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불완전한 정책원리” 이라고 지적한다.

 

전병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팀 책임연구원도 ‘팔길이 원칙, 문화 민주주의, 창조적 산업’ 라는 글에서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그는 “ 예술이 소수의 향유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문화민주주의에 복무 할 때 국가는 복지국가 이념에 근거해 준 공공재로서 지원한다. 하지만 지원은 국가와 긴밀하게 정책적 협의 한 다음 예산 집행에서만 독자성을 갖는다. 또한 책임 행정이라는 측면서 예산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다시말해 문예위 영진위 등 위원회가 정부와 협의없이 정책적 판단과 결정을 독자적으로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정부와 긴밀한 정책적 협의를 거친 뒤 지원금 분배에 한해 독자성을 가진다는 의미이란 것이다.

 

즉 정부는 무책임하게 돈만 주고 나몰라 하지말고, 그 지원금을 받은 문예위 영진위 등 예술기관 및 단체도 눈먼 돈이라도 되는 양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의 혈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 어떠했는가? 지난 김대중정부 이래로 역대 정부들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라는 가짜 뉴스에 속아왔다. 한마디로 무책임한 문화행정을 해 왔고 그 수혜를 받은 일부 예술단체는 지원금이 자신들의 쌈짓 돈인양 사용했다. 영화계 일부 단체들의 가짜 영수증 등 회계부정 및 사기 횡령이 이를 잘 말해준다.

 

2014년 제 19회 부산영화제의 경우를 보자. 당시 영화제와 부산시 간에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놓고 대립했었다.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이빙 벨'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영화제측은 팔길이 정책을 들고나와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해친다고 반대했다.

 

영화제 측과 부산시가 ‘협의’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측은 일방적으로 ‘간섭하지 않는다’ 만 강조해 정치화했다. 팔길이 정책에서 책임행정은 무시한 채 ‘간섭하지 않는다’ 는 부분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논란을 확대시킨 것이다. 당시 '다이빙벨'은 영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정도로 세월호 사건을 한쪽 시각에서만 본 수준 이하의 다큐멘터리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2023년 봄 윤석열정부 2년차를 맞는 지금, 더 이상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가 금과옥조도, 전가의 보도도 될수 없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가짜 뉴스가 윤 정부에서도 그대로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윤정부는 송강호 박찬욱 등 칸느영화제 수상자와 김동호위원장 임권택감독 등을 만나는 자리에서 윤정부의 기조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선동적인 가짜 슬로건이 폐기되거나 재고할 때도 됐건만 오히려 계승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심히 걱정된다.

 

설사 팔길이 정책을 지속하더라도 이젠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선심쓰듯 돈만 주지말고 끝까지 책임행정을 다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폼나고 그럴듯한 가짜 뉴스에 속지 말고 국민의 혈세가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하는 지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와 함께 과연 국가는 예술을 지원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부터, 지원한다면 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효율적인지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지난 25년동안 주도했던 586운동권 중심의 문화예술 카르텔을 깰수 있을 것이고 순수한 문화예술인들이 고루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