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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김수경 칼럼] 김대중의 용서는 굴욕이었을까?

'사과하지 않는 전두환을 용서한 김대중'
'김대중의 용서론에서 일본 과거사 해법의 단서를'

 

[사형 선고 내린 전두환을 용서한 김대중]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는 당시 재야인사였던 김대중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한다. 그는 군사재판에 넘겨져 이듬해 사형이 확정된다. 당시 김대중은 법정 최후 진술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 정치보복이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을 남긴다. 사건이 국제사회에 알려지고 대대적인 구명운동이 벌어김대지자 압박을 느낀 신군부는 김대중의 형을 20년으로 감형한다. 김대중은 “다시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1982년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1997년 12월 20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청한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 등의 혐의가 인정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2년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한 것이니, 평소 내가 설파했던 ‘용서론’을 실천하기로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복권은 앞으로 더 이상의 정치 보복이나 지역적 대립은 없어야 한다는 내 염원을 담은 상징적 조치였다.”

 

이 두 개의 역사적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이 사과하지 않았음에도 그를 용서했다. 둘째, 김대중 대통령이 전두환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로소 권력을 쥐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결국, 가해자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을 때 화해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피해자가 절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올라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용서란 기적을 행하는 인간의 능력”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오로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에서 가해자의 사과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일본은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통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듯 보였지만,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게 행동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일본이 이미 수십 차례 반성과 사과를 말했다고 강조했지만, 망언이 수십, 수백 차례 반복된 것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김대중의 용서론에서 일본 과거사 해법의 단서를]

결국 일본은 사과도 망언도 철저한 정치적 계산 하에 수행하는 전략일 뿐, 더 이상 진심이냐 아니냐를 판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일본이 사과했다고 좋아하고 망언했다고 화를 내며 일희일비하는 것이 오히려 일본의 정치적 수 싸움에 말려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국제정치의 현실은 냉혹해지고, 도덕이나 양심 같은 ‘진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고 피해자만 고통받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는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론에서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전두환이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는데도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용서했다. 이를 두고 굴욕이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전두환을 용서했으니 앞으로 누구도 전두환을 비난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한일관계 정상화가 비록 여러 비판의 지점들이 존재하지만 ‘신(新)을사조약’ 운운하며 국권을 빼앗긴 사건에 견주어질 만큼 굴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제 한일관계가 복원되었으니 더 이상 일본의 과오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임기 내내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한 거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김 대통령의 재임 시기는 IMF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일본과의 경제 협력이 절실했던 때이다. 김 대통령은 1998년 일본을 방문해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며 “두 나라가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취임 초기에는 김대중 정부의 실리주의 대일외교 원칙을 고수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모든 문제를 다 후벼 파서 감정적 대립 관계로 끌고 가는 것이 우리 후손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다. 비록 노무현 정부 후반으로 갈수록 한일관계는 악화되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앞선 세대가 회복된 한일관계를 물려줘야 한다는 역사 인식은 김대중 대통령과 동일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볼 때 두 대통령의 실리주의 외교는 과연 ‘매국’이자 ‘굴욕’이었을까? 오히려 그 정반대다. 김대중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일본 문화를 개방했을 때 ‘왜색 문화’가 한국 문화를 잠식하게 될 거라는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도리어 한류(韓流)가 일본의 대중문화 시장을 ‘접수’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그만큼 실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용서와 화해라는 것도 실력이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국제정치 무대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일본을 용서하자는 것도, 역사를 잊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리주의 외교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길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영리한 외교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실리주의 외교는 어쩌면 국제관계 속에 강자만이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인지도 모르겠다.<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