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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가짜뉴스와 반(反)지성주의

가짜뉴스는 반지성주의 확산의 촉매제
윤 정부 노동·교육·연금 개혁도 가짜뉴스와 반지성주의가 발목
정부의 정확한 정보 제공과 설득 노력 통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

사실과 다른 내용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퍼뜨리는 ‘가짜뉴스’가 한국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하고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MBC가 확산시킨 ‘뇌송송 구멍탁’의 광우병 소 파동, 201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탈 원전’을 밀어붙이면서 근거로 내세웠던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원전 사고로 1,368 명이 사망했다”라는 주장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대표적인 방송사와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대놓고 가짜뉴스를 내놓았고, 또 퍼뜨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들이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 주장을 사실인 양 늘어놓았다는 점이다.

 

‘공영방송’과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지위로 인해 이들의 주장이 무게감 있게 전파됐고, 이들과 정치적 진영을 같이하는 사람들에 의해 빠르게 확산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 전체가 얼마나 큰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폐해를 입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사회관계망(SNS)과 유튜브 등을 통해 개인들이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사실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가짜뉴스의 발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책임 있는 언론사와 정치지도자의 의도된 거짓뉴스 살포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한국 사회가 정치적 좌·우 진영으로 극명하게 갈라져 있고, 진지한 담론보다는 ‘팬덤’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식의 가짜뉴스 제조와 살포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가짜뉴스의 또 다른 문제는 사회 전반에 반(反)지성주의를 확산시키는 촉매가 된다는 점이다. ‘지식, 배움의 대상에 대해 적대감과 불신을 갖는 경향’을 뜻하는 반지성주의는 가짜뉴스를 일삼는 사회지도층에 의해 뿌리내려지기가 쉽다. 얼핏 듣기에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한 그들의 선동적인 한마디가 전문가들이 오랜 노력 끝에 쌓아 올린 지식과 정보를 부정하고 뒤엎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정권 차원의 핵심 아젠다로 선포한 노동·교육·연금 개혁 조치를 진행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윤 정부가 전임 좌파 정부 시절의 획일적인 주52 시간 근로제도 강행으로 인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선택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자, 노동기득권을 거머쥔 대형노조와 야당이 “과로사 환경을 다시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라는 주장을 퍼뜨리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가짜뉴스 횡행과 그에 따른 반지성주의 확산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주요 이슈로 떠오른 것들에 대해 정부가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첫걸음이다. 개혁 조치를 내놓아야 할 때는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달성 가능한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영국이 온갖 ‘괴담’을 물리치고 해묵은 과제였던 연금 개혁 조치를 2007년 성공적으로 단행한 것은 이런 노력 덕분이었다. 오랜 야당 시절을 딛고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 보수당은 재집권하자마자 연금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밀어붙였다. 기초 연금 최소 납부 기간을 줄이고,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것을 골자로 한 개혁방안에 반발하는 국민이 많았지만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실무팀을 꾸려 신뢰도를 높였고, 연금 제도와 관련한 복잡한 숫자와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국민에게 공개한 덕분이다. 보수당 정부의 이런 조치는 가짜 뉴스를 차단하고 연금 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데 주효했다. 한국 사회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