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인 728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 외에도 지역화폐, 아동수당, 농어촌 기본소득 등 이재명표 복지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우선 총량면에서 보면 올해 본예산 673조3000억원보다 54조7000억원(8.1%) 늘어난 '슈퍼' 예산안이다. 정부는 29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내년도 예산안과 '2025~2029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확정했다. 예산안은 다음달 3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정부안이 이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나랏빚이 내년에 140조원 이상 늘어나게 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사상 처음으로 50%를 돌파한다. 국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마지노선은 40%다. 이 수준을 넘으면 재정위기가 올 우려가 크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뿌릴 씨앗이 부족하다고 밭을 묵히는 우를 범할 수 없다.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재정씨앗론”을 다시 강조했다. 확장재정 전환을 공식화 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대공황을 벗어나기 위해 테네시계곡을 개발하고 댐을 건설하던 것처럼 재정의 투자지출을 통해 성장의 불씨를 살리려고 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그러나 내년 예산안은 복지지출에 치중되어 있다. 복지·고용·보건 예산 비중 37% 등 줄이기 힘든 '경직성 지출'이 확대되고 총지출 증가율이 '총수입의 2배'에 이르러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올 49%, 2029년 59%로 급증할 전망이다. 정부가 29일 2026년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지난 3년 동안 유지됐던 건전재정 기조도 막을 내리게 됐다. 재정준칙 등 건전재정을 위한 준칙은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위기의 전조다.
세부적으로 보면 우선 내년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을 올해보다 8.2% 늘리기로 했다.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269조 1000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37%에 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일반·지방행정 예산(121조 1000억 원), 교육(99조 8000억 원), 국방(66조 3000억 원) 등의 순으로 예산 비중이 컸다.
복지 예산의 증가율은 전체 총지출 증가율(8.1%)을 넘어서는 수치다. 24조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국비 지원과 월 15만 원의 농어민 기본소득 시범사업 예산 등 이재명표 예산이 복지·지방 등에 포함된 주요 예산들이다. 금년에 추경을 통해 도입되었던 지역화폐의 효과는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실정이다. 대체로 경제학자들은 재정의 이전지출은 승수효과가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미 농어촌에는 적지 않은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다. 정부의 농촌소득 통계를 보면 년간 약 2000만원 정도가 외부이전소득인데 대부분 정부이전소득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월 15만 원의 농어민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는 구상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월 15만 원의 농어민 기본소득 시범사업 1천703억원은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군(69개) 중 6개 군을 공모로 선정해 약 24만명에게 월 15만원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지급할 계획이다. 확대는 시간문제다. 이외에도 사회연대경제 구축을 위해 8조6000억원의 예산을 증액한 것은 지금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복지지출은 한번 지원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여기에 저출생과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까지 더해보면 향후 복지 예산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좌편향 이념편향 예산안도 포함되어 있다. 지역화폐 농어민기본소득 사회연대경제 구축 등도 기본적으로 좌편향 정책이지만 에너지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탈원전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정부 예산의 중심축은 재생에너지 쪽으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는 모습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6년 산업부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 8973억원 대비 3730억원(41.6%) 증가한 1조2703억원으로 편성됐다. 반면 내년 원전 예산은 5194억원으로 올해 대비 305억원(6.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예산 편성은 지난 7월 2차 추가경정예산부터였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에 예산 1118억원을 추가 편성했지만, 원자력 관련 예산은 추가 편성하지 않았다. 7월 추경과 내년도 본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4858억원 늘어난 반면, 원전 예산은 그 10분의 1 수준인 305억원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정부는 확대된 재생에너지 예산을 기반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을 이행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사업과 보급지원사업에 총 8501억원이 투입된다. 특히 RE100 산업단지와 영농형 태양광, 햇빛·바람연금 등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2배이자 역대 최대인 6480억원으로 증액됐다.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개발 투자도 강화된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핵심 기술 개발 사업에 역대 최대 규모인 3358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초고효율 탠덤 태양전지와 20㎿(메가와트) 이상의 대형 풍력 블레이드 등 태양광·풍력 분야 첨단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초고압직류송전(HVDC) 개발 예산은 120억원으로 올해 대비 2배 늘었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계통 제약 등을 보완하기 위한 인공지능(AI) 기반 분산전력망 산업 육성에도 1196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것이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에너지고속도로의 주요 내용이다. 에너지고속도로는 거의 풍력 태양광이 밀집해 있는 서해안에 치중하고 있다. 송전선이 통과하는 주민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역 편향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원전에 비해 단가가 3~4배 비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되는 인공지능 고속도로가 가능할 것인가 문제다. 지금도 전기요금이 비싸서 전기요금이 싼 야간에만 공장을 가동하거나 아예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사업체도 있는 실정이다.
내년부터 고준위 방폐장 용지 선정 등 굵직한 원전 관련 현안들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산 소요가 크다는 평가다. 다만 정부는 내년 원전 예산을 소폭 늘렸지만 그마저도 대형 원전이 아닌 소형모듈원전(SMR)에 무게를 뒀다. 정부는 원전 관련 예산으로 SMR 혁신제조 국산화 기술 개발 사업에 81억원을 신규 편성했고, 방사선 환경 실증 기반 구축 사업에 15억원을 새로 편성했다. 트럼프는 “재생 에너지사업은 사기다”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에서만 앞으로 대형 원전을 300기가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두바이 체코 원전건설에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손잡고 진출한 경험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기회다. 그러나 국내에서 원전을 홀대하면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가 걱정이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2025~2029년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 기간 복지 예산은 연평균 6.0%씩 늘어 전체 총지출 증가율(5.5%)을 넘어선다. 여기에 국채 이자까지 더한 의무지출은 향후 매년 6.3%씩 늘어나는 구조다. 세수가 갑자기 증가하지 않는 이상 국가 성장에 써야 할 돈(재량지출)이 매년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 재량지출 증가율은 연평균 4.6%에 불과해 의무지출 증가율보다 1.7%포인트 더 낮다.
씀씀이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수입은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내년 총수입 증가율은 3.5%에 불과해 총지출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계에 비유하면 마이너스 통장으로 돌려막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실제 내년 국가부채는 1415조 원으로 1년 만에 142조 원 불어 단숨에 1400조 원을 돌파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로 2.5%포인트 오르고 2029년에는 59%에 이르게 된다.
정부가 29일 2026년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지난 3년 동안 유지됐던 건전재정 기조도 막을 내리게 됐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소비심리 개선으로 살아난 성장의 불꽃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날 공개한 2025~2029년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이 기간 복지 예산은 연평균 6.0%씩 늘어 전체 총지출 증가율(5.5%)을 넘어선다. 여기에 국채 이자까지 더한 의무지출은 향후 매년 6.3%씩 늘어나는 구조다. 세수가 갑자기 증가하지 않는 이상 국가 성장에 써야 할 돈(재량지출)이 매년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씀씀이가 늘어나는 것과 반대로 수입은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내년 총수입 증가율은 3.5%에 불과해 총지출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년 국가부채는 1415조 원으로 1년 만에 142조 원 불어 단숨에 1400조 원을 돌파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로 2.5%포인트 오르고 2029년에는 59%에 이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확장 재정이 이재명 정부 내내 이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 기재부 계획을 보면 총지출 증가율은 2027년과 2028년 각 5%, 2029년에도 4%로 잡혀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내내 4%를 웃돈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비율은 2029년엔 58%까지 치솟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압박에 따른 국방비 증액 등을 감안하면 60%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재정정책은 문재인 정부 시절을 연상하게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2019년 5월 국가채무와 관련해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데 국제기구는 60% 정도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적극 재정을 펼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고 있는 재정통계 매뉴얼상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금, 정부기능 수행으로 지게 된 공기업의 채무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overnment debt)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한국만의 국가재정법에 의한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차이를 모르는데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이어 2021년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재정지출 확대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일종의 ‘재정확대 선순환’ 이론을 제시했다. 재정지출 확대→경기회복→세수 증대→재정지출 추가 확대→경기회복 가속’으로 재정확대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므로 적극적으로 재정 확대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놓은 것이다. 일종의 ‘재정주도성장’ 이론이다. 이런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 여당은 추가경정예산 추진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거나 국채를 발행해 재정지출을 하면 소득이 얼마나 증가하느냐를 보는 지표로 흔히 재정승수가 이용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정부투자지출은 0.9, 정부소비지출은 0.8, 이전지출은 0.3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금살포식 이전지출을 1조 원 하면 소득은 3천억 원밖에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세금을 거두면 소비가 줄고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올라서 투자가 줄어드는 등 민간부문의 투자소비 활동이 위축되는 밀어내기 효과, 즉 구축효과가 발생해 재정지출의 소득증대 효과는 1보다 적게 나온다는 것이 재정학의 정설이다.
문 정부 5년 동안 재정지출을 확대한 나머지 2022년 말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한국의 재정상황은 국가부채는 날로 증가해 재정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데도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정책이 이재명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모습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로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등 경제에 부담만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재정이 성장의 ‘씨앗’이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재정지출 확대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특히 재정의 소비지출 이전지출은 재정승수도 극히 낮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혁신과 역동성이 살아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재정을 이룰 수 있도록 민간기업을 지원해 주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구조 개혁의 청사진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재정설계 단계에서 선거를 의식하고 이념편향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국가백년대계의 정신으로 재정을 설계해야 한다.
오정근 바른언론시민행동 공동대표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트루스가디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