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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 진압 주역 박진경 대령 76주기 추모식 18일 열려.

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 등 11개 단체, 18일 국립서울현충원 제54묘역에서 추모식 개최.
주최 측 “고 박진경 대령을 제주도민을 학살한 학살의 주범으로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비판.

 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 박진경대령유족회, 프리덤칼리지장학회 등 11개 단체가 18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제54묘역에서 제주 4.3 사건 당시 남로당이 주도한 폭동을 진압한 뒤 좌익 부하에게 암살당한 故 박진경 대령을 기리는 제76주기 추모행사를 열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4.3 사건 당시 제11연대장으로 부임해 4.3사건을 진압한 직후 남로당에 포섭된 휘하 부하에게 암살당했다.

 

 박 대령 추모행사는 2019년까지 제주도 애국시민들이 제주 충혼묘지에서 개최해 왔으나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다가 2021년부터 박진경대령유족회(금초회), 해군사관학교구국동지회,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제주4·3경찰유족회, 제주4·3사건진실규명을위한도민연대, 프리덤칼리지장학회,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등 다수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추모장소를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옮겼고, 작년에는 전군구국동지연합회와 한국NGO연합이 추모식 주최 단체로 참여했다.  올해는 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 실향민중앙협의회 등이 추가 합류했다.

 

 주최 측은 “박진경 대령은 1948년 4·3폭동 발생 후 제11연대장으로 제주도에 부임하여, 공산폭도 백 명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주민이 한 명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으로 주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공산주의자들을 효과적으로 진압한 유능한 지휘관”이었다면서 “이것이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군내 남로당 세력이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이유였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또 “최근 일부 좌파세력이 박진경 대령을 제주도민을 학살한 학살의 주범으로 음해하고 있다”며 “지속되는 추모식 행사가 박 대령의 명예를 회복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국역사 정상화에 일조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속적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추모식 행사와 더불어 나종삼 4·3전문가와 유족회 박철균 예비역 장군이 <제주4·3사건과 박진경 대령>이라는 책을 공동 저술하여 6월 중에 출간할 예정이다. 

 

 [故 박진경 대령은 누구인가]

 

 1918년 12월 22일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서 5남으로태어나 제2차세계대전 당시 학병으로 징집되어 일본 마쓰도 육군공병 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되어 제주도에서 복무했다. 8.15 광복 이후에는 부산에서 우파단체인 경남국군준비대 및 부설 군관학교에서 활동하다가 제5연대 창설 요원으로 입대했으며 우수하사관으로 추천되어 소위로 현지 임관했다. 그리고 1948년 5월 6일~15일까지 제9연대장, 1948년 5월 15일부터 6월 18일 새벽 암살 시까지 제11연대장 등을 역임하며 총 4개의 대대를 지휘했다.

 

 박진경 대령은 11연대장으로서 1948년 5월 30일부터 6월 17일까지 남로당이 일으킨 4.3 사건의 진압작전을 끝내고 그날 밤에 제주도 지사가 베푼 대령진급축하연에 참석하고 돌아와 취침중에 부하인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 등의 남로당 프락치들에게 암살당했다.

 

 [故 박진경 대령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거짓말]

 박철균 정치학 박사(예비역 장군)는 2022년 8월 18일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주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74주년 기념 학술 대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에서 박진경 대령의 성과를 왜곡 폄훼하는 대표적인 거짓말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박진경 대령이 학살자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박철균 박사는 “4.3사건은 남로당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12개의 시설이 공격받고 우익인사를 무참히 학살하며 하루에만 약 20여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박진경이 부임한 1948년 5월 6일부터 6월 17일까지, 약 43일동안 사살되거나 돌아가신 분의 숫자는 25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고 박진경 대령을 학살자라고 평가하는 건 터무니 없는 거짓에 해당하는 것이다.

 

 1948년 5월 20일에 경비대원 41명이 탈영해 무장대 측에 가담하는 사건이 생겼는데, 탈영자들이 박진경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반기를 들어 탈영했다는 주장도 있다. 박 박사는 “실제 박진경 대령은 5월 30일에 1차 작전을 시작했으며,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동원 가능 수가 800명 중 400명은 확실성이 있으며 200명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 박사는 박진경 대령이 사로잡은 포로 숫자가 무려 6,000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묘한 왜곡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진경 대령은 5월 30일 1차 작전에서 약 599명을 체포하고 후에 있었던 2차 작전에서 약 50여명을 체포하여 도합 약 650여명을 체포했다. 1948년 6월 18일 조선중앙일보 신문에 등장한 6,000명의 폭도 체포는, 4.3사건이 발생한 4월 3일부터 6월 18일까지 체포된 숫자를 말했던 것이었고 이는 박진경 대령의 진실을 왜곡하기 위한 좌익의 거짓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주 4.3사건 왜곡의 시작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공산 폭동 세력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사용을 악마로 만들었으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그 공권력의 중심에 박진경 대령이 있었다”고 설명했고, 같은 날 좌정을 맡은 박인환 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진경 대령의 사망으로 인해 국군 내 공산주의자들의 숙군 작업이 이뤄졌고, 6.25 전쟁 때 그나마 국군이 제대로 나라를 지키는 데에 앞장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권구혁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