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발간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내용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문 정권에서 크게 위축된 북한인권 관련해서다.
문재인 정권은 3년 연속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했으며 국내 탈북민들과 북한인권단체들에 대한 사무조사, 대북전단금지법 제정 등 여러 가지 압박으로 국제인권사회로부터 많은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문 정권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 김여정의 하명법으로 알려져있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북한 인권과 관련해 “우리로서는 인권 규범을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규탄 대열에 서면 당장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또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면 그만큼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에 앞서서 북한 주민의 생존권을 중시하는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먀낭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문 정권 5년은 북한인권의 암흑기에 비유된다. 국제 인권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지난 2022년 3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국이 지난 5년 간의 북한 인권 침묵에서 벗어나게 돼 기쁘다”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기독교연대(CSW) 벤 로저스 동아시아 담당 선임분석관은 윤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SNS에 “대선 결과에 기쁘며 윤석열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김정은을 애지중지하고 북한인권에 대한 호소를 묵살한 문재인의 5년이 마침내 끝났다”고 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청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상정되면 기본적으로 숨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끄러운 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며 “차기 대통령은 한국의 통일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자유연합의 수잔 숄티 의장도 VOA에 “윤 후보의 당선으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한국정부에 의해 인권 상황이 더 이상 무시받지 않게 된 것에 대해 기쁘고 고무적”이라고 했다.
한편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코로나 시기에는 북한이 (중략) 전단과 풍선 속의 물품이 코로나 병균을 전파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가세돼 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북한 측 입장만 설명했다. 또 “수준이 저열한 대북전단은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 정권이 강행한 ‘대북전단법’은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인다. 김여정은 2020년 6월 4일 대북전단을 날리는 탈북민 단체들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청와대를 향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법이도 만들라’고 지령(?)을 내렸다.
김여정은 이날 발표한 담화문에서 “탈북자라는 것들이 기어나와 수십만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측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망나니짓을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며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함부로 우리의 최고존엄가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댔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한 김여정은 대북전단을 날린 탈북민들을 행해 “그 바보들” “탈북자라는 것들” “글자나 겨우 뜯어볼가 말가하는 그 바보들” “똥개들” “쓰레기들”이라고 폄하했다. 이어 “똥개들은 똥개들이고 이제는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며 “구차하게 변명하지 말고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고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를 향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법’을 만들라고 직접적으로 하명한 것이다. 김여정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 폐지와 개성공단 완전 철거, 그리고 ‘있으나마나한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며 단단히 단도리를 했다.
이날 김여정이 담화문을 발표한 지 불과 4시간여 만에 문재인 통일부는 “대북전단 중단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무릎을 꿇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북 삐라는 참으로 백해무익한 행위”라며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에 대해서 정부가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도 대북전단 살포는 접경 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현 민주당 대표)은 2021년 6월 30일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대표발의했다. 그리고 민주당은 그해 12월 14일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킨 뒤 대북전단금지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당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필리버스터에 돌입해 무려 10시간 이상을 혼자 발언을 이어갔다. 당시 태 의원은 “이건 대북전단지법이 아니라 김정은과 손잡고 북한주민을 영원히 노예의 처지에서 헤매게 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문 정권이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키자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022년 4월 15일(현지시간) 미 하원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을 계기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권’을 주제로 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대북전단금지법 등을 통해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쇠퇴를 불러왔다는 증언자들의 비판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 개최를 주도한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이 탈북민 출신 박상학 씨가 대북전단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에 매우 충격적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스미스 의원은 “북한정권이 국경을 넘어 대북전단을 날려보내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도발’로 비난한 후에 문재인 정권이 대북전단을 범죄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전체주의 김씨 정권의 요구에 굽실거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했다. 유엔의 아이린 칸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 4월 19일 문 정부에 서한을 보내 대북전단금지법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19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문 정부에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한국정부의 반복적인 권고와 행정 조치에도 대북전단·물품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에 지속적인 위협을 초래하고 있어 법을 통한 제한이 필요하다” “개정법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제한을 두는 것으로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 방식에 최소한의 제약을 두는 것”이라며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문 전 대통령이 비핵화 회담 결렬의 책임을 북한이 아닌 미국에 돌린 데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문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서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그런데 그 능력을 무시한 채 북한의 의도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세를 오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1938년 뮌헨회담 당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독일 영토를 더 이상 확장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의도를 전적으로 신뢰했다”면서 “그 결과로 다음 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