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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칼럼

[TG칼럼]다시 일어나는 친일 논쟁,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총독부 관리 시험에 합격했다면?

'운명'에서 "농고 졸업 후 공무원 시험 합격했다"고 밝혀 일제 관리 시험으로 추측돼
일제말기 총독부 관리 시험은 황국청년의 사명 등을 묻는 문제 나와
친일문제 전문가 장신 교수 "총독부가 요구하는 관리는 일제에 헌신할 수 있는 수족이었다"고 밝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 문형용 씨가 친일파냐 아니냐는 논쟁이 느닷없지만 거세질 듯 하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부친을 친일파라고 했다면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부친 명예훼손 혐의로 12일 고소했다.

 

박 장관은 6일 국회에서 "백선엽이 스물 몇 살 때 친일파라고 한다면 문 전 대통령의 부친도 나이가 거의 똑같다. 1920년생으로 당시 흥남시 농업계장을 했다"며 “백선엽 장군을 단지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친일파라고 한다면 일제시대 군인, 공무원을 다 친일파로 자리매김할 우려가 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같은 날 문 전 대통령 측 윤건영 의원이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기자브리핑에서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친일파’였다는 박 장관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이라며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의 일이고 유엔 군이 진주한 기간 짧게나마 농업 과장을 하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박 장관은 12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소에 대한 입장문'에서 “문 전 대통령 부친을 친일파로 일방적으로 몰아가거나 비판을 한 바 없다"며 “백선엽 장군이든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든 그 삶을 함부로 규정지어선 안 된다. 이번 고소를 통해 무엇이 친일이고, 누가 친일파인지 보다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는 계기가 된다면 망외의 소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좌파 진영에서 주장하는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은 1940년대 초 간도특설대 초급 장교로서 했던 역할과 관련한 것이다. 그가 우리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는 주장도 있으나 당시 만주에 독립군은 거의 없었다는 견해도 있다. 간도특설대는 팔로군 조선의용군 등 중국공산당 휘하의 항일 조직을 토벌하는 부대였다.

 

문 전 대통령의 부친 문형용 씨는 어떤가? 문 씨는 함흥농고를 1940년에 졸업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졸업 후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문형용 씨가 합격했다는 공무원 시험은 일제 강점기 총독부 관리가 되는 ‘보통문관시험’(보통시험)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니면 농고 졸업 5년이 지난 해방 직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 군정 또는 이후 수립된 김일성 정부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인데 졸업 후 오랜 공백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렵다.

 

일제는 관리의 등급을 고등관, 판임관 등으로 나눴는데 보통시험은 판임관 시험이었다. 조선총독부급소속관서직원록에 등재되는 기준도 판임관 이상이었으므로 판임관은 명실상부한 조선총독부의 관리였다.

 

친일문제 전문가 장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19~43년 조선총독부의 관리임용과 보통문관시험’이라는 논문에서 “조선총독부가 요구하는 관리는 실무형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제반 정책을 이해하고 선전할 수 있는 스타일이어야 했다”며 “193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보통시험문제에서 황민화 정책이나 전시 체제의 색이 짙어져 갔다”고 밝혔다.

 

예를들면 1937년 보통시험의 작문 문제는 ‘황국청년의 사명’ 이었고, 1943년도 보통시험 합격자의 구술시험 문제는 ‘대동아전쟁 발발 이래 특히 군(君)의 마음에 충동을 주었던 점을 5개 이야기하라’ 등 이었다.

 

장 교수는 논문에서 “총독부는 판임관이 될 수험생들은 일본어를 생활화할 것을 요구받았다. 관리는 일본인으로서 확고한 국가관을 체득했는지를 평가받았다”며 “전시체제기로 돌입하면서 조선총독부가 요구한 관리는 기계적으로 집행만 하는 ‘로봇팔’이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구애됨 없이 일제에 헌신할 수 있는 ‘피가 흐르는 수족’이었다”고 적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졸업 후 '보통시험'에 합격했다면 총독부가 원하는 황국신민의 관료가 지녀야할 정신체계를 구술하지 않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갖고 친일파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박 장관의 문제 제기는 이 지점에 있는 듯하다. 망국의 상황 속에서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총독부 초급 관리를 지망했던 이들의 삶도, 좌파 진영이 오래 전부터 막무가내로 휘둘러 온 과거사 청산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떠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장 교수도 논문의 맺음말에서 “일상과 보통학교 교육에서 민족의식을 경험하지 못한 조선인에게 조선총독부 관리는 마냥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민족적 자괴감이 남아 있다손 치더라도 실업과 빈곤이라는 무력한 현실 앞에서 더이상 버틸 수 만은 없었다”며 “1930년대에 들어 민족해방운동이 둔화되고 식민지 안정책과 중국대륙침략으로 일제의 조선지배가 공고해 보이면서 그러한 경향은 가속화되었다”고 했다.

 

이 문장을 읽으면 답답하면서도 울컥한 당시의 삶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제 우리가 다시 어떻게 ‘그때 그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재단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