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27.5℃
  • 흐림강릉 25.6℃
  • 흐림서울 30.1℃
  • 흐림대전 29.3℃
  • 흐림대구 30.5℃
  • 구름많음울산 27.2℃
  • 구름많음광주 30.9℃
  • 구름조금부산 28.9℃
  • 구름조금고창 30.2℃
  • 제주 26.8℃
  • 구름많음강화 25.6℃
  • 구름많음보은 26.7℃
  • 구름많음금산 25.5℃
  • 흐림강진군 25.0℃
  • 구름많음경주시 27.9℃
  • 구름조금거제 28.2℃
기상청 제공

[팩트 체크] 한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

광복군 부사령관 김원봉, 월북 후 북한정권 수뇌부로 활동...6.25전쟁 동안 후방서 북한군 군량미 생산, 남파간첩단 훈련도
독립군 지휘한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에서 동료 한인무장대원들 몰살에 가담
신원식 “대한민국 국군은 공산주의자를 받아들이고 찬양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헌법이 국군에게 부여한 지엄한 명령”

 

문재인 전 대통령은 28일 “육사 교정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 철거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자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좌익 항일무장단체인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다는 주장이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공산주의자 김원봉이 부사령관으로 활동한 광복군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이 한국군의 뿌리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왔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과 광복군을 우리 군의 출발점으로 제대로 교육하라”며 국방부에 광복군을 한국군 역사로 편입시키라고 권고했다. 그해 12월 방중 당시에는 중국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 복원에 합의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9월 6.25전쟁 당시 우리 군의 38선 돌파를 기념해 10월 1일로 제정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꾸자는 결의문을 제출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주장했다.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고,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는 주장으로, 공산주의자 김원봉이 자유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는 주장이었다.

 

김원봉이 만들었다는 조선의용대는 중국 장개석 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직됐고 중국 국민정부군 산하에서 활동했다. 중국 공산당은 조선의용대 대부분은 흡수했으나, 김원봉은 테러 행각에 의구심을 품고 그의 투항을 거부했다. 이에 김원봉은 임시정부와 손잡고 광복군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김원봉은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대립했고, 광복군 지휘 통수 계통도 따르지 않았다. 해방 후 그는 좌익 진역에 가담해 활동하다 1948년 월북했다. 그는 북한정권에서 국가검열상, 조선인민공화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로서 후방에서 북한군의 군량미를 생산하는 일을 했다. 이로 인해 김일성으로부터 노력훈장을 수여받았다. 1954년 1월 25일 김원봉의 직접 지휘 하에 대한민국의 경제 혼란 및 선거 방해를 목적으로 남파된 간첩단 4명이 체포됐다. 김원봉은 그 후 김일성과의 정치 암투에서 패배해 김일성에 의해 잔인하게 숙청당했다. 1958년 10월 ‘반국가적 및 반혁명적 책동의 죄’로 대의원 권한이 박탈됐고, 정치범수용소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물을 두고 문 전 대통령은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려는 부정한 의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홍범도는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으로 알려졌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만주에 주둔 중이던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끈 대한군복로독군부의 독립군 연합부대 등이 중국 지린성 화룡현 봉오동에서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 남양수비대 예하 1개 중대와 싸운 전투다. 일본군 정규군 부대가 봉오동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정부를 입수한 홍범도 사령관은 봉오동 골짜기에서 병력을 매복하고 적을 유인했다. 이날 대한북로군독군부를 주축으로 한 북간도 독립군 연합세력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승리를 거뒀다.

 

청산리 전투는 1920년 10월 21일 김좌진, 나중소, 서일, 이범석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대한신민단 예하 신민단 독립군을 주축으로 한 만주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과 벌인 전투다.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일본군을 백운평 골짜기로 유인해 200여 명의 일본군 부대를 섬멸했다. 이어 홍범도가 지휘하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완루구에서 일본군을 공격해 400여 명을 사살하거나 중경상을 입혔다. 이후 천수평, 어랑촌, 천보산, 고동하 등지에서 연이어 격전이 벌어져 한인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뒀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 일대의 한인 마을을 초토화하고 재산과 식량을 약탈했으며, 한인들을 학살하는 경신(庚申)참변을 저질렀다. 상황이 위급해지자 서일,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지청천의 서로군정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 여러 조직으로 분산되어 있던 독립군은 일단 중국 독립군의 근거지 였던 헤이룽장성 밀산[密山]에 집결했다가 독립군을 통합 ·재편성하여 병력 3500 명의 대한독립군단으로 조직했다.

 

대한독립군단은 이동휘와 한국사회당의 선전에 속아 소련 혁명세력의 후원과 독립군 단일지도부 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북쪽으로 이동했다. 러시아 제야 강변에 위치한 자유시에 집결한 홍범도를 비롯해 한인 무장부대 4,500여 명은 대한국민회의를 지지하는 이르쿠츠크파와 이동휘를 지지하는 한인사회당파(상해파 고려공산당)로 분열됐다. 이르쿠츠파 무장세력의 핵심은 자유대대였고, 상해파의 주력은 사할린부대였다.

 

홍범도는 처음에는 사할린부대 편에 섰으며, 이르쿠츠파 배후에 소비에트 정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6월 2일 안무, 최진동, 지청천 등과 함께 이르쿠츠파의 자유대대 진영으로 돌아섰다.

 

소비에트 정부는 6월 28일 수라세프카에 주둔 중이던 사할린 부대를 포위했고, 홍범도, 최진동, 안무, 이청천 등은 사할린 부대를 공격했다.

 

그들은 기관총과 대포, 장갑차를 앞세워 적군 편입을 거부한 한국 독립군들은 무차별 학살했다. 자유시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당한 부대는 청산리전투에 참가했던 의군부 대원들이었다. 항일 독립운동 영웅으로 추앙받는 홍범도는 자유시참변에서 한국 무장 독립군을 몰살시키는 데 앞장선 것이다.

 

이후 홍범도는 고려혁명군 여단 제1대대장에 임명됐다. 그의 공식 직함은 적군 내 한인 빨치산(의용군) 대장이었다.

 

홍범도는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극동 제민족대회(극동인민대표대회)에 한인 대표 56명 중 한명으로 선출돼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대회가 끝난 뒤 2월 초 홍범도는 한인 무장세력(고력혁명군) 대표 자격으로 레닌, 트로츠키와 면담했다. 레닌은 홍범도에게 혁명정권에 협조해준 감사의 표시로 금화 100루블, 군복 한 벌, 홍범도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로 주었다.

 

한편 육군사관학교는 기원을 1946년 5월 1일 개교한 ‘남조선 국방경비대 사관학교’에 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1945년 12월 5일 개교한 ‘군사영어학교(Military Language School)’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남조선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는 6월 15일 ‘조선경비대 사관학교’로 명칭을 바꾸었고,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948년 9월 5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Korea Military Academy)’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28일 문 전 대통령을 향해 “국군의 뿌리를 흔든 것은 바로 당신이었다”며 문 정권이 5년 동안 국군의 뿌리를 붉게 물들게 하기 위해 반국가적, 반군적 행위를 했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 홍범도 등 독립군을 국군의 뿌리로 할 수 있도록 육사 교과과정 개편을 지시했다며 이는 “독립운동을 핑계로 종북 주사파의 세계관을 군 장교단에 심기 위함”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 1일 대대적인 선전과 함께 소련군 복장을 한 홍범도 흉상을 생도들이 매일 볼 수 있는 장소에 설치했다”며 “6.25전쟁은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이 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소련 공산당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면죄부 정도가 아니라 찬양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2019년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전 대통령은 ‘국군의 뿌리가 남침의 주역인 김원봉’이라며 국군 정신 해체의 결정타를 날렸다”며 “공산주의자 신영복을 존경하는 것이 문 전 대통령의 진심임을 비로소 온 국민이 알게된 순간”이라고 했다.

 

신 의원은 “일제와 싸운 경력이 있으면 소련군 출신도 남침을 한 북한군 고급 간부도 다 국군의 뿌리가 되느냐”며 “혹시 최종적으로 북한이 보천보 전투의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김일성도 국군의 뿌리로 만드려고 하신 건 아니냐”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군은 공산주의자를 받아들이고 찬양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헌법이 국군에게 부여한 지엄한 명령”이라며 “대한민국의 뿌리는 6.25전쟁을 포함 3천여 회에 걸친 북한의 침략과 도발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킨 호국영령이며 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독립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도 당연히 포함되지만 김원봉과 홍범도는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takahee@hanmail.net